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





예배와말씀
주일설교    |  예배와말씀  | 주일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10-07 17:20 조회 28 댓글 0
 
첨부 181007 오전설교d.mp3 (24.1M) 3회 다운로드 DATE : 2018-10-07 17:58:2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스겔 18:21-24)

 


주전 597년에 1차 바빌로니아 침공에 의해 사람들이 바빌로니아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여호야긴 왕과 유다 사회 상류층, 그리고 에스겔도 꿀려갔습니다. 에스겔은 ‘에헤즈켈’, ‘하나님께서 힘있게 하시기를’입니다. 그렇게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겁니다. 그들은 부모의 죗값으로 후손들이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그 부모 세대에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가 말씀을 듣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 끝내 그들에게 벌을 내리신 겁니다. 그러면 말 안 들은 부모 세대가 포로가 되어 끌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식 세대가 포로가 되어 끌려왔습니다. 그러니 그 자녀들 세대에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먹은 신 포도 때문에 아들의 이가 시어야 하느냐?” 에스겔 18:2,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직도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 하는 속담을 담고 있느냐?”

 

이것은 출애굽기 20:5-6의 말씀이 근거가 됩니다. “너희는 그것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그러니 고난을 당하는 자녀들이 불평할 만합니다. 부모의 죄 때문에 이런 고생을 당하고 있다고 말할 만도 합니다.

 

민수기 13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합니다. 그런데 열두 명 중에 열 명이, 그 땅을 좋지 않게 평했고, 그 땅에는 이미 키가 큰 자손들이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면서 아우성을 칩니다. 이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함께 정탐을 다녀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12, “내가 전염병으로 이들을 쳐서 없애고, 너를 이들보다 더 크고 힘센 나라가 되게 하겠다.” 아예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세우겠다 하십니다. 그래서 민수기 14:18-19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말합니다. “‘나 주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사랑이 넘치어서 죄와 허물을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아니한다. 나는,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린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이집트를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주님께서 이 백성을 용서하신 것처럼, 이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는, 아버지가 죄를 지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린다”고 하셨지만,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그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그 땅을 못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들의 마음은 그랬습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잡혀간 것이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이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일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것은 포로가 되어 잡혀 간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스겔 11:3, “그들은 모두 ‘집을 지을 때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 성읍은 가마솥이고, 우리는 그 안에 담긴 고기다.’ 하고 말한다.” 여기 가마솥에 대한 비유는, 도살할 짐승에서 먹을 수 있는 부분과 먹지 못할 부분의 가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가마솥에 담긴 고기는 먹을 수 있는 고기이고, 가마솥에 들지 못한 고기는 버려진 고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마솥의 고기고, 잡혀 간 사람들은 버려진 고기라는 겁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신들은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예루살렘에 남겨두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에스겔 11:1에서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앉아 있는 사람 스물다섯 명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 “사람아, 이 사람들은 이 성읍에서 포악한 일을 꾸며 내며 악독한 일을 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집을 지을 때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 성읍은 가마솥이고, 우리는 그 안에 담긴 고기다’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포악한 일을 꾸며내며, 악독한 일을 꾀한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그 성읍에서 내쫓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에스겔 18: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영혼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나 똑같이 나의 것이니, 범죄하는 영혼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5절 이하, 어떤 사람이 의로워서 법과 의를 실천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지켜서 진실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아버지의 진실한 삶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본인의 진실함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9절, “나의 모든 규례를 지켜서 진실하게 행동하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런데, 10절 이하, 이 의로운 사람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은, 선은 하나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합니다. 아버지와는 반대로 우상을 섬기며, 갖가지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랬는데도 아버지의 의로움으로 그가 살아날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b절, “그는 절대로 살지 못할 것이니, 이 모든 역겨운 일을 하였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14절 이하, 이 의롭지 못한 사람이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서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선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실천하고, 율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버지가 의롭지 못했으니, 삼사 대 내려오는 아버지의 벌을 따라 이 사람도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7b절, “나의 규례를 실천하고, 나의 율례대로 살아가면,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죄악 때문에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그 아들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느냐?”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리 말씀하지 않으셨느냐?” 예,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5-6, “너희는 그것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이제 폐기되어야 할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다만 문제는, 그 자손이 의를 행하거나 죄를 지으면, 그 때도 아버지의 벌과 사랑의 영향을 받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9-20절, “그런데 너희는, 왜 그 아들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아들은 법과 의를 실천하며,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그것들을 실천하였으므로,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죄를 지은 영혼 바로 그 사람이 죽을 것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가 아들의 죄에 대한 벌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의인의 의도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자신의 행동에 따라 벌을 받기도 하고,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이건,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나 하나, 아무렇게 살다간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가 아닙니다. 나 때문에 내 자손이 하나님의 벌을 받기도 하고, 나 때문에 내 자손이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우리 대가 아니라 우리 자손의 대에서도 반드시 물으십니다.

 

열왕기하 11장,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몇 번이나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1:11-13, “네가 이러한 일을 하였고, 내 언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네게서 왕국을 떼어서, 네 신하에게 주겠다. 다만 네가 사는 날 동안에는,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네 아들 대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 나라를 갈라놓겠다. 그러나 이 나라를 갈라서, 다 남에게 내주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내가 선택한 예루살렘을 생각해서,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예, 죄는 솔로몬이 지었습니다. 솔로몬이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이제 하나님의 벌을 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우상숭배는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엄히 금하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벌은 솔로몬의 아들 대에 내리신답니다. 왜 그렇게 하신답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놀랍지 않습니까?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아들 솔로몬의 죄에 대하여 벌을 내리지 않으시겠답니다. 예, 아버지의 의로움으로 그 자식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대에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북왕국을 차지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남왕국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의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합니다. 왜 아버지의 잘못을 자신이 떠맡아야 하느냐는 겁니다. 잘못은 아버지가 했는데, 왜 아들이 그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먹은 신 포도에 아들의 이가 시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아버지가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그 벌이 아들에게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아들은 아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그런 벌은 아들에게 내리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아들이 당한 그 벌은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겁니다. 에스겔 18:14 이하, 의롭지 못한 사람이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서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선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실천하고, 율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버지가 의롭지 못했으니, 삼사 대 내려오는 아버지의 벌을 따라 이 사람도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7b절, “나의 규례를 실천하고, 나의 율례대로 살아가면,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죄악 때문에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솔로몬의 아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서 나라를 나누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셨는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의로웠습니까? 아닙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도 의롭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하는 북쪽 지파가 르호보암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메워 주신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소.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당신들에게 메우겠소.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였지만,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 그리고 열왕기상 12:15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이 이렇게 백성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일을 그렇게 뒤틀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를 시켜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가 둘로 나누어진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솔로몬의 책임입니다. 솔로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르호보암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이 잘 했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그 아들의 이가 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내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우리의 조상들이 언제 예수 믿기나 했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래서 그 말씀대로 살기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하나님의 벌이 삼사 대까지 내려온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0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침 일찍이 만난 일꾼에게나, 아홉 시에 만난 일꾼에게나, 오후 세 시에 만난 일꾼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나가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이 물었습니다. “왜 당신들은 온종일 빈둥거리고 있소?”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오후 여섯 시에 일이 마쳤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품삯을 줍니다. 그것도 관리인에게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후 세 시에 온 사람도, 오전 아홉 시에 온 사람도, 오전 여섯 시에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생각했는데, 마찬가지로 한 데나리온을 주니, 투덜거립니다.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은 당신의 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우리를 후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와서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준 이 포도원 주인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이미 신 포도를 먹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가 당연히 시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받는 벌을 우리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 때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역시 신 포도를 먹은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의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이는 당연히 시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오늘 여기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괜찮은 사람입니까? 아무 죄가 없는 사람입니까? 그나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 정도이지, 예수 믿기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나 율례를 알았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나 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역시 신 포도를 먹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벌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이젠, 부모의 죄가 어떠냐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후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삼사 대로 하나님의 벌이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상징으로 32장에서, 예레미야는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에게서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삽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조롱할 겁니다. 나라가 망한다고 외치던 사람이 땅을 샀으니 말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 하나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이 도성이 이미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저더러 돈을 주고 밭을 사며, 증인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 땅을 바빌로니아에게 넘겨주었지만,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노여움과 울화 때문에 그들을 여러 나라로 내쫓아버렸지만,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이 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도록 하신답니다.

 

예레미야 31:27-30,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전에 그들을 뽑아내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재앙에 빠뜨리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그들을 세우고 심으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가 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각자가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신 포도를 먹은 그 사람의 이만이 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깡그리 잊어버리십니다. 그래서 34b절,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03:8-13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시다. 두고두고 꾸짖지 않으시며, 노를 끝없이 품지 않으신다. 우리 죄를, 지은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우리 잘못을, 저지른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도 크시다. 동이 서에서부터 먼 것처럼, 우리 반역을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시며,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엽게 여기신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부모의 죄든, 우리 자신의 죄든,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없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오직 각자가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신 포도를 먹는 그 사람의 이만 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23절,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은 모든 죄악을, 내가 다시는 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그가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살아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24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범하고, 악인이 저지르는 모든 역겨운 일을 똑같이 하면, 그가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지킨 모든 의는 전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성실과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죄에서 떠나 의를 행하면, 그 모든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며 삼사 대 자손에게 이어질 벌이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의에서 떠나면, 그래서 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움 또한 기억하지 아니하신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수천 대 자손에게까지 한결같은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18:31-32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렇기에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살아나야 하고, 다른 사람들 또한 살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5:32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그래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회단상
금주의 찬양
교회주보

인사말씀

비전및표어

예배안내

교회연혁

섬기는분들

오시는길

포토앨범

교회소식

행사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