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





예배와말씀
주일설교    |  예배와말씀  | 주일설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9-30 19:41 조회 135 댓글 0
 
첨부 180930 설교.mp3 (22.3M) 8회 다운로드 DATE : 2018-10-01 08:01:06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히브리서 11:8, 17-19)

 


역대기하 6:14,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에나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종들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서 44: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속량자이신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시작이요, 마감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  예레미야 10:6-7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주님과 같으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며, 주님의 이름은 크시고, 권능을 지니셨습니다. 세계 만민의 임금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공경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세계 만민의 모든 지혜 있는 자들 가운데서도, 모든 나라의 왕들 가운데서도, 주님과 같으신 분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86:10, “주님은 위대하셔서 놀라운 일을 하시니, 주님만이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 은혜, 노하기를 더디 하심, 사랑과 진실하심은 성경이 오래도록 고백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출애굽기 34:6, 하나님께서 모세 앞을 지나가시면서 선포하셨습니다. “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그래서 시편 145:8에서 이렇게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를 부르십니다. 요엘서 2:12-13,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 그래서 시편 84:1-4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기자나,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 있어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 있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편 35:10, “주님, 주님과 같은 분이 누굽니까? 주님은 약한 사람을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며, 가난한 사람과 억압을 받는 사람을 약탈하는 자들에게서 건지십니다. 이것은 나의 뼈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여기, “나의 뼈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냥 입으로 해 본 노래가 아닙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뒤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수많은 아픔과 두려움을 겪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경험한 뒤의 고백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백이 곧 우리의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런데 간혹 이런 이야기도 듣습니다. “오히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보다 낫다.” 이런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도 간혹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물어봅시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보다 나은 게 무엇입니까? 착하다는 건가요? 열심히 있고 성실하다는 건가요? 거짓말도 안하고, 신실하다는 건가요? 남을 잘 도와준다는 건가요? 그 외에도 많이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착하게 살기 위해서입니까? 열심히 있고 성실하게 살기 위해서입니까? 거짓말도 안하고,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입니까? 남을 잘 도와주기 위해서입니까? 그래서 예수 믿는 여러분, 그렇게 살고 있나요? 그래서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안 믿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말하나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예, 구원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건 어느 종교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겁니다. 분명히 요한복음 3:16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로마서 10: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전부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아무 공로가 없다는 겁니다. 여전히 주님 앞에 나서기가 부끄럽다는 겁니다. 삶에 대해서는, 안 믿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사랑해야 하는 사람조차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욕심은 예수 믿기 전이나 예수 믿은 후나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보다 더 교만해졌습니다. 이제는 뭐든지 내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내 뜻에 따라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니 안 믿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보십시오. 세상 누구도 처음부터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깨끗해져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도 없습니다. 죄가 있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먼저 그렇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외아들을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예,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디 갈대아 사람의 우루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럴 때에 ‘갈대아’라는 곳은 바빌로니아를 말합니다. 지금은 이라크의 중부 도시 바그다드 부근입니다. 창세기 11:2,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시날’ 땅은 바빌로니아를 말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들의 후손인 겁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11:10-29에 그 족보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세 아들,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하란은 롯을 낳고 그가 태어난 곳인 갈대아 사람의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나홀은 그 갈대아 사람의 우르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31절,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라함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리고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거기,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란에 머물게 되었고, 그의 나이 일흔다섯에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창세기 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습니다.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은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후손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습니다. 그 땅에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땅을 소유한다는 것도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3:14-17,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그리고 창세기 15: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이 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떠났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주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왜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은 같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가나안 땅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들을 달라고는 기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가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다고 하는 구절도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할 까닭이 없어서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이 어찌 기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들이 서울의 모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이렇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저렇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이번에 분양하는 아파트에 당첨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그래서 응답이 되면 내 믿음이 좋은 것이고, 응답이 안 되면 내 믿음이 적든지,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시든지….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무얼 해주시고 안 해주시고가 아닙니다. 해주시던 안 해주시던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땅을 너희 후손에게 주겠다.” “너의 후손이 먼지같이 많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렇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되던 안 되든 그건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가야할 땅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 땅이 좋던 나쁘던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그 땅을 갖기 위해 얼마나 힘들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꼭 이루어주길 바랍니다. 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말씀보다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 같아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입니다. 그 말씀에 대해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신다.’ 이런 말씀은 좋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예배하라, 기도하라, 전도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의 말씀은, 생각해 보고, 상황에 따라, 내 뜻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있는데, 하나님은 없습니다. 말씀은 있는데, 예수님은 없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바울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2: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여기, 중요한 것은 그냥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산겁니다.

 

마태복음 20:17 이하,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나아와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24절,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쉽게 말하자면, “지들만 예수님의 제자냐?”는 겁니다. “우리는 뭐 핫바지인 줄 아느냐?”는 겁니다.

 

지금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 눈에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이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었던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대부분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시자 달라졌습니다. 그 달라졌다는 것은 신비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진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께 드려진 삶을 삽니다.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으로 여기며 삽니다.

 

창세기 22장,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습니다. 약속의 장소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올려놓고 그 아들을 묶어서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잡으려고 칼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예,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안 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아들을 통하여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먼지같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아들이 이삭인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이 번제로 죽어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민할 까닭이 없습니다. 두려워할 까닭도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9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릴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갈 길을 알지도 못하면서 떠났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길이 어떤지, 그 길로 가면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로 왜 가야하는지 알아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 알고, 생각해 보고, 가야 할 곳이 내 마음에 들면, 그 때에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신대로 사십시오.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사랑하십시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십시오.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십시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하셨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베풀라고 하셨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라 하셨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말라 하셨으니 놀라지 마십시오.

 

여리고 성을 돌면 무너진다고 해서 여리고 성을 도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미친 짓 아닙니까? 아니, 그렇게 돈다고 그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그렇다면, 만약에 그것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미친 분으로 여기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돌았습니다. 그랬더니 성이 무너졌고, 그래서 이겼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예수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느냐? 세상에 종교가 얼마나 많은데….” 라고 합니다. 글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종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걷는 겁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일, 모레, 글피, 그리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인생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가야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그 길을 가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내일, 모레, 그리고 오년 뒤, 십년 뒤를 어떻게 할까?’하고 연구하겠습니까? 지금부터 그 때를 위하여 모아 두고, 쌓아두겠습니까? 먹을 것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러겠습니까? 적금도 들고, 연금도 들고 그러겠습니까? 물론, 불확실한 삶을 살기에 우리 그렇게 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았다간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아 둘 수 있으면 모아두고, 쌓아둘 수 있으면 쌓아두어야 합니다. 먹을 것도 건강식으로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적금도 들고, 연금도 들고, 그래서 앞으로의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다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에,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지만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종들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위대하셔서 놀라운 일을 하시니, 주님만이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누구든지 주님께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에나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하나님”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루실 줄 믿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회단상
금주의 찬양
교회주보

인사말씀

비전및표어

예배안내

교회연혁

섬기는분들

오시는길

포토앨범

교회소식

행사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