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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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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9-23 18:51 조회 151 댓글 0
 
첨부 0923 주일낮예배e.mp3 (21.9M) 15회 다운로드 DATE : 2018-09-26 09:15:46

의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능력(로마서 1:16-17)

 


마가복음 2:17b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겁니까?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겁니까? 예, 분명히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어떻게 됩니까?

 

창세기 6-8장까지 홍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땅을 덮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든 노아와 그 식구들을 살았고, 그 외의 모든 사람과 마른 땅 위에서 숨을 쉬며 사는 것들은 모두 물속에 잠겨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왜 살아났습니까? 창세기 6:9,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세상에서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홍수로 모든 사람과 생물이 죽을 때에, 노아와 그 식구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의인이었기에 살려주셨습니다.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합니다. 그 전에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0절,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 알아보겠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주님께 가까이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고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아브라함이 한 이 말이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의인과 악인을 똑같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악인은 죽어도, 의인은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아도 살아난 겁니다.

 

이것은 주님께서도 맞는 말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의인 쉰 명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멸망시키겠다는 하십니다. 그래서 얼른 아브라함이 또 말씀드립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감히 하나님께 아룁니다.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그렇게 해서 끝내 열 명으로 내려갔습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우리는 그 당시 소돔 성의 인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3:10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롯은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12-13절,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돔 성은 살기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법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도 우리가 한껏 양보해서 2만 명에서 5만 명으로 계산 했을 때에, 그 가운데 열 명이라면 정말 작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소돔 성 안에 있는 죄인 다수보다도 의인 열 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찾지 않으시고, 죄인을 찾으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예수님께서 의인을 제쳐놓고 죄인만을 찾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5:32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여기,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죄인이 회개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 의인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모든 사람이 의인되게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자신이 없으십니까? 의인이라고 그러기엔 뭔가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 같고, 죄인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까?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그렇다고 죄인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예수 믿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도 믿습니다. 그런데도, “의인이냐?”고 물으면 망설입니다. 의인이라고 하기엔 좀 뭔가 게름직한 겁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느냐?’는 겁니다. 국어사전에서 의인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의롭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를 위해 나서는 기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의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사고 차량을 발견하고 앞에서 일부러 사고를 내 그 사고 차량을 세우게 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해낸 오 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 사람에게 ‘고속도로 의인 상’을 주었습니다. 수협중앙회는 바다에 전복한 배에서 일곱 명의 선원을 건져낸 두 명의 선장에게 의인 상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뺑소니차를 경찰에 신고하고, 5킬로미터를 따라가서 법인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국교통안전공사에서 의인 상을 주었습니다. 봉화 엽총 난사사건을 제압한 사람이 모 기업에서 의인 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자기 생명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생명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장에 뛰어들어서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렇기에 의인이라고 해서 상을 줄 만도 합니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의를 위해 나서는 기개’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이런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3:10-12,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절,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14절,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15-16절,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래서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로마서 3:10-12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어느 누구도 ‘나는 의인이 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드릴 테니, 곰곰이 자신을 돌아다보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아닌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부르러 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생각으로 “의롭다”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착하고, 신실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칭송 받고, 그래서 법이 없어도 될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의인이 아닙니다. 야무지고, 똑똑하고, 지혜롭고, 그래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다고 해서 의인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을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이들은 의인이라고 인정받았습니까? 이들은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5-6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 갔습니다.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옮겨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절,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17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은 그가 그의 외아들까지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면 의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이 아니라고 하시면 죄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의인이라고 여기시는 근거는 믿음입니다. 창세기 15: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22장,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알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1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겁니다. 결코 믿음이 없이 행동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도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시작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행동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인 것을 누가 어떻게 압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은 몰라주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할 겁니까? 그러면 됩니까? 아닙니다. 안 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물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따른 행동이 없다면, 누가 과연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습니까?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오전 3시31분, 인류 최초의 태양 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Parker Solar Probe)'가 미국 나사에 의해서 발사되었습니다. 이 ‘파커 솔라 프로브’는 태양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리고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비행체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우주선을 타고 태양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상상도 못할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광경을 볼 것입니다. 이럴 때에, 그 사람이 보았다는 그 놀라운 광경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비행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태양 가까이 가서, 태양을 본 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일 겁니다. 아마도 우리가 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 만남을 경험했더라면, 그 경험은 굉장한 경험일 것입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마음속에만 담고 있다면? 생각, 기억 속에만 담고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늘 그 감동으로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그런 경험이, 이웃이나 세상에게는 어떤 의미이겠느냐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름대로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다운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본 것을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그 경험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것을 본,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습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우선,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실, 이 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구원이 없다면, 사람에게는 영원히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우리의 희망인 겁니다. 더구나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3:16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 “하나님께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의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의인이 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사는 것이 곧 신앙생활인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또한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십니다. 그래서 의인은 또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의롭게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것은 예배드림입니다. 예배드림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예배드림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세상의 모든 예배마다 구원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가인과 아벨 때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의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가는 곳마다, 도착해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고, 그 안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23-24, “참되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성령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 예배드림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기도하는 것 역시 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야고보서 5:16-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여기 의인은 누구입니까? 유명한 사람입니까?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예, 능력이 있고 유명한 부흥사나 기도원 원장 같은 사람입니까? 기도의 은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자신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의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기도는 그냥 기도가 아니라 의인의 기도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의인의 기도는 어떻다고 하셨습니까?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이것이 의인이 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기, 엘리야는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본성을 가졌습니다. 우리하고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와 우리가 다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엘리야는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합니까?

 

열왕기상 18:41 이하에서 엘리야가 기도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을 바라보며 몸을 굽히고,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시종은 올라가서 보고 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다시 그의 시종에게, 일곱 번을 그렇게 더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그 시종은 마침내,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부터 떠올라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어서 병거를 갖추고 내려가라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45절, “그러는 동안에 이미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캄캄해지고,  바람이 일더니, 곧 큰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면, 엘리야의 기도로 비가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18:1, 많은 날이 흘러서, 삼 년이 되던 해에,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아합을 만나거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 그러니까, 엘리야의 기도보다,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였습니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비가 내렸습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은사가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리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에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납니다. 그러나 “너는 이제 의인이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의인으로 삼으신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기에 머물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렇기에, 기도한다는 것은, 그래서 큰 효력을 나타낸다는 것은 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의인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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