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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함으로 받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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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9-02 18:40 조회 159 댓글 0
 
첨부 18.09.02.오전설교c.mp3 (22.9M) 18회 다운로드 DATE : 2018-09-02 19:29:29

순종함으로 받는 복(신명기 28:1-6)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축복합니다.” “주님의 복이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복이 언제나 충만하기를 빕니다.

성경성구대사전을 찾아보면, ‘복’이라는 단어는 주로 구약에서 사용됩니다. ‘복을 내리다’, ‘복을 누리다’, ‘복을 주다’는 모두 구약에만 나옵니다. ‘복되다’도 신약에는 다섯 곳에 나오고 모두 구약에만 나옵니다. ‘복’이라는 단어도 신약에는 여섯 곳에 나오고 모두 구약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복이 있다’는 단어는 신약에 마흔한 번 나오고 모두는 구약에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설교와 누가복음 6장의 평지설교에서 말씀하신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복이 아닙니다. 가난입니다. 슬픔입니다. 온유와 주리고 목마름과 자비, 마음이 깨끗함, 평화를 이루고,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입니다.

 

그러고 보면, 신약성경 어디에도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요한계시록에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19:9, “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여라.’ 그리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 이럴 때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22:14,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해서 도성으로 들어가려고, 자기 겉옷을 깨끗이 빠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럴 때에 그 옷을 빠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죄를 씻김 받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9, 그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찬양합니다. 그리고 14절, “이 사람들은 큰 환란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의 복을 받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삶에서 얻는 복은 대부분 구약에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세상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당신들에게 찾아와서 당신들을 따를 것입니다. 당신들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가 복을 받아 자식을 많이 낳고, 땅이 복을 받아 열매를 풍성하게 내고, 집짐승이 복을 받아 번식할 것이니, 소도 많아지고 양도 새끼를 많이 낳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곡식 광주리도 반죽 그릇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을까요? 못 받을까요? 예수 믿으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면, “당신들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가 복을 받아 자식을 많이 낳고, 땅이 복을 받아 열매를 풍성하게 내고, 집짐승이 복을 받아 번식할 것이니, 소도 많아지고 양도 새끼를 많이 낳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곡식 광주리도 반죽 그릇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하셨더라면 참 좋았을 터인데, 그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면 ‘복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예수 믿고 복을 받았나요? 그래서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충만으로 사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복이라면 또 무엇이 있나요? 돈은 어떻습니까? 건강은 어떻습니까? 권세는 어떻습니까? 그래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겠지요? 그것도 적게 보다는 많이 있는 것이 좋겠지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 권세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마, 아멘 안 하는 사람은 “그게 무슨 복이냐?”고 말할 겁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기복신앙이다.” 라고 말할 겁니다.

 

그럴까요? 기복신앙일까요. 복을 비는 것은 기복신앙일까요? 정말 돈은 일만 악의 뿌리일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시지 않는 걸까요? 예수님 또한 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실까요?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게 살아야만 할까요? 그렇다면,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세상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당신들에게 찾아와서 당신들을 따를 것입니다.”라는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구약의 말씀이니 무시해야 하나요? 율법의 말씀이니 무시해야 하나요? 만약 그래야 한다면, 무시해야 한다면, 구약성경 전체를 무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믿습니까?

 

요한복음 15:7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럴 때,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에서 “무엇을 구하든지”이라는 말씀은 어느 정도라는 걸까요?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할 때 “모든 일”은 어디까지일까요? 뭐가 가능하고 뭐가 불가능 할까요? 로마서 8:5-7,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은 무엇이며,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육신의 생각이고, 구원에 대해 신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영의 생각일까요?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죄입니까? 먹고 사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죽음입니까? 그래서 먹을 것에 대해서, 육신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전부일까요?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럴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다는 것도 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냥 아무렇게 신앙생활하려면, 그냥 내 생각대로 신앙생활하려면 어려울 것은 없지만, 어떻게 하든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이럴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까지 가는 길을 힘든 길입니다. 광야입니다. 마실 물도 없습니다.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 물을 주셨습니다. 만나라는 양식도 주셨습니다. 메추라기라고 하는 고기도 주셨습니다. 신명기 8:3a,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4절, “지난 사십 년 동안, 당신들의 몸에 걸친 옷이 해어진 일이 없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습니다.” 예, 분명히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기에 그 약속의 땅에 들어왔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약속의 땅에서 살 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여전히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풍년이 들게 하시고, 전염병이 돌지 않게 하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삶의 순간마다 지켜주시고 돌보십니다.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말하는 영적인 것 만입니까? 11-13절,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 사도 바울의 생애에서 주님께서는 그의 육신의 필요도 채워주셨습니다. 때로는 비천했지만, 때로는 풍족했습니다. 때로는 배불렀지만, 때로는 굶주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울 사도는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 주신 능력이 영적인 것 만이겠습니까?

 

데살로니가후서 3:10,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거듭 명하였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11-12절, “그런데 우리가 들으니, 여러분 가운데는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은 하지 않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하며, 또 권면합니다.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서 먹으십시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는 것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럴 때에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다 알아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거 아닙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먹게 하시는 겁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오해랄까 착각이랄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은 자동으로 받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은 자동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애써서 수고해야 합니다. 땀을 흘리고, 희생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어볼게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과 구원은 관계가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4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럴 때에, 원수를 사랑하는 것,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까? 만약,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구원과 관계가 있다면, 마마도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는 구원과 관계사 없다면 왜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24-25,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물론, “주님,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면 그 외에 다른 기도는 어떻습니까? 병을 고쳐달라든지, 물질의 복을 달라든지, 자녀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어떻습니까? 이 기도는 구원을 얻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요? 그렇다면, 왜 기도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7:9-11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 빵과 생선은 유대 사람들이 주로 먹는 양식입니다. 자식이 그것을 달라고 하는 데 엉뚱한 것을 주는 아버지가 없듯이, 성도들이 그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도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라는 겁니다. 기도하면 그런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십일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분명히 십일조를 하면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십일조를 하면 복을 주시나요?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십일조를 하면 복을 주신다고 해서 십일조를 한다면 그것은 기복신앙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에서 복을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십일조를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래도 복을 주시나요? 당연히 안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은 몰라도, 하늘 문을 열고 쏟아 부어 주는 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엄격하게 따지면 십일조를 하는 것과 구원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9-10, “너희 온 백성이 나의 것을 훔치니, 너희 모두가 저주를 받는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복을 주십니다.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십일조만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분명한 것은 ‘바치는 일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바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이럴 때에,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는 복이 필요 없습니다. 특히 물질의 복이나 건강의 복은 하나님의 나라에선 필요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럴 때에 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과 지키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기도하면 복을 준다고 해서 복을 달라고 기도하면 그것은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또 고민이 생깁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원하면 주십니까? 우리가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다 받으셨나요? 아닙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적절한 때에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는 겁니다. 결정은 주님께서 하시겠지만, 기도는 우리가 하는 겁니다. 기도하라하셨고,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십일조를 하던, 기도를 하던, 원수를 사랑하던, 약속을 믿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십일조를 하는 거나 기도를 하는 건, 원수를 사랑하는 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권리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우리 잘못도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십일조 하는 것과 기도와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적이 오르면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제 이것은 아들의 당당한 권리입니다.

 

이건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으면 당연히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심지어 ‘그런다고 복을 받느냐?’라고 생각합니다. 복을 구하는 것은 기복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다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복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받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가난했습니다. 대부분이 마룻바닥에 앉아서 예배드렸습니다. 그 때도 허리가 아팠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배드렸습니다. 그 마룻바닥에 앉아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같이 나가서 종일 일하고도 밤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했습니다. 꾸벅 꾸벅 졸면서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워낙 가진 게 없다보니, 달라는 기도가 많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권리였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고, 그래서 그 후손인 우리가 복을 받은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이나 건강 등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에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8:1-2,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주의 깊게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세상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당신들에게 찾아와서 당신들을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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