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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붙들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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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8-19 22:11 조회 183 댓글 0
 
첨부 20180819 오전설교c.mp3 (22.8M) 15회 다운로드 DATE : 2018-08-20 09:02:06

내가 너를 붙들어 주겠다.(이사야 41:8-16)

 


이번 어린이여름성경학교 주제가 “용기 레벨 업. 히어러즈”입니다. 여기 “히어러즈”라는 말은 “영웅”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언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예레미야, 엘리야, 에스겔 이들이 살았던 당시 배경과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목회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랬습니다. “그래도 주제는 언제나 예수님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예수님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이 들은 이야기 또 들려줍니다. 같은 이야기를 또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성도들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저들의 마음에 산이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게 해달라고.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26 이하에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마침 그 내시는 마차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읽던 성경구절은 이렇습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이것은 이사야 53:7-8의 말씀입니다. 내시가 빌립에게 말합니다.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그리고 35절,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랬습니다. 빌립은 이사야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성경 어디를 읽든지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구약의 인물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서, 아브라함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사야 40장, 41장의 배경은 바빌로니아 포로기입니다. 이럴 때, 바빌로니아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실까?’ ‘주님께서는 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지 않으실까?’ 그래서 불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이 멸망한 다음 두 세대가 지난 뒤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운명이 자기들의 잘못과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건 부당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사실, 우리의 불평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수 없는 겁니다. 이웃 사람도 내가 아파하면 함께 아파해 줍니다. 이웃 사람도 내가 힘들어하면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내 사정도 모르시고, 나의 정당한 권리도 지켜주시지 않으십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건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불평은 가당치도 않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그들을 버리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으신데, 우리는 왜 이렇게 아파하며 고통당해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은 뭐냐 라는 겁니다.

 

과거엔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전쟁은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이기심으로 이스라엘도 이겼습니다. 그건, 출애굽부터 계속된 거였습니다. 바로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을 빼내 오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인도하셔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에서 나라를 세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그 백성을 구해주신 분이십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포로로 잡혀온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 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이사야 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예,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 소망으로 삼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랍니다. 그것은 할아버지 때나 아버지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문제의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혜가 부족하지도 않고, 힘이 없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렇기에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이사야 1:2-3,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그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식으로 키웠습니다. 그들을 먹여서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되는데, 돌아오지도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상처 난 곳과 매 맞은 곳을 치료받아야 하고, 짜낼 것은 짜내고, 싸맬 것을 싸매야하는데, 그런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18,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여전히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세월이 오래 지났다고 해서 그분은 힘을 잃거나, 머리가 나빠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옛날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해서 다 돌보지 못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분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내 생각, 내 잔꾀로 무엇인가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되물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정말로 믿습니까? 정말 믿으세요? 가만히 스스로를 생각해 보세요. 정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나 하나님을 찾으셨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없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하고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에게나 상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만약 아무에게나 상을 주신다면 우리가 뭐 하러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이 시간에 여기에 왜 나와 앉아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며, 기력을 주십니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새 힘을 주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이 올라가는 새 힘을 주십니다. 뛰어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새 힘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 힘을 얻어서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상을 받았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상을 받았습니까? 무슨 상을 받았습니까?

 

물론, 믿는 사람들이 받을 상은 구원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3-14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3:10-11,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예, 이 부르심의 상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어집니다. 요한복음 3:16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은 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주님의 걸음을 따라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주춤거리고 머뭇거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방황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렇게 힘들어 할 때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또한 들리지 않는 겁니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심지어 일 년, 오 년, 십 년, 아니, 평생을 기도했는데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점점 작아집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불평만 생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뭐가 재미있고, 뭐가 신이 나겠습니까? 예배 참석해도 아무런 기쁨이나 감격이 없는데, 그런데 예배 참석하고 싶겠습니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데, 그런데도 기도하고 싶겠습니까?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그래서 그 은혜를 누리고 산다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며, 기력을 주신다면 무슨 일인들 마다하겠습니까?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새 힘을 주신다면,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이 올라가는 새 힘을 주신다면, 뛰어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힘을 주신다면, 왜 낙심하고 절망하겠습니까? 왜 우리가 불평하겠습니까? 왜 우리가 주춤거리고 머뭇거리겠습니까? 왜 우리가 울겠습니까? 왜 우리가 아파하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기뻐하고, 왜 기도하고, 왜 감사해야 합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까? 예, 당연히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그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요?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은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일까요? 낙심하고 절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불평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며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늘 울어야 하고, 늘 아파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고민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민입니다. 이 아픔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입니다. 이건 어느 아픔보다도 더 큰 아픔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하는, 그래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하는 그런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절,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선택한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너를 불러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이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린 적이 없으십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워서 그러셨겠습니까? 우리 같은 걸 살려,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셔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겠습니까? 그렇게 하신 것은 단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죽이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겠습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10-11절,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너에게 화를 낸 모든 자들이 수치를 당하여 당황할 것이다. 너와 다투던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자들처럼 되어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겠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답니다. 승리의 오른팔로 붙들어주시겠답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우리를 힘들게 하던 그 모든 것을 멸망시키시겠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우리를 힘들게 하던 것들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게 하겠답니다. 사로잡혀 와 있는, 그래서 아무 희망이 없는 자들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겁니다. 10b절,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그래서 14절,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 주님께서 도우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렁이 같은 야곱, 벌레 같은 이스라엘. 그러나 그들을 돕는 하나님,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하셨습니다. 그들의 죗값을 치루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하나님의 도우심은 그냥 돕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여러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셨다면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감사하겠습니까? 눈에 보이도록 도와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데요?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모르고,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은, 우리가 일어나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가 힘을 얻어 새로운 일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세상에 얽매인 우리에게 비전과 꿈을 주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16절, “내가 너를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들 터이니, 네가 산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언덕을 겨로 만들 것이다. 네가 산들을 까불면, 바람이 그 가루를 날려 버릴 것이며, 회오리바람이 그것들을 흩을 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나 주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며,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여기 산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고, 언덕을 겨로 만드는 일은 누가 합니까? 새 타작기가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그렇다면 타작기인 우리 자신이 움직여야 합니다. 타작기는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닙니다. 타작기는 돌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움직여 봅시다. 그래서 우리가 산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듭시다. 우리가 언덕을 겨로 만듭시다. 지금, 여러분이 가루로 만들어 날려 보내야 산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겨로 만들어야 할 언덕이 무엇입니까? 염려입니까? 근심입니까? 두려움입니까? 절망입니까? 실패입니까? 불평입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이제 우리는 지렁이 같던, 벌레 같던, 그런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이제는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입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듭시다. 이 모든 것을 겨로 만듭시다. 그래서 바람에 날려 보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옛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무엇이 염려가 됩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16-17,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도, 누구도 이 성전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하나님의 것이듯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

믿습니까?
확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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