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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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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8-12 19:51 조회 180 댓글 0
 
첨부 20180812 오전설교b.mp3 (21.8M) 14회 다운로드 DATE : 2018-08-12 19:5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로마서 3:21-26)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 열 명과 악한 사람 두 명이 싸우면 악한 사람이 이깁니다. 선한 사람 열 명은 이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 좋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화부터 냅니다. 좋게 해결되기보다는 서로 망가져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끝끝내 자기주장을 외칩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편이 몇 명이냐가 아니라, 어느 편이 큰 소리를 내느냐가 이기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2:1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남을 정죄합니다.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율법에 조금도 거스른 적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2:6-11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이기심에 사로 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을 주실 것이요,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어집니다. 이들은 선한 일을 하기에,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기심에 사로 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이들은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환난과 고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 행함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참으면서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고, 이기심에 사로 잡혀서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을 행하느냐 악을 행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갈리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께서 특히 로마서에서 강조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과는 거리가 먼 겁니다. 선이든 악이든,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어진다고 하셨을까요? 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신다고 하셨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로마서 2:1에서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라고 하는 바로 그 “그러므로”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것은 로마서 1:19-23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뀌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남을 심판하는 것은, 사람 안에 계셔야 할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그 자리에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을 올려놓은 결과로 나타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여러분은 이 사람들이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왜 사람 안에 계셔야 할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그 자리에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라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을 올려놓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어쩌자고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대답은 ‘이기심’입니다. 로마서 2:8에, “이기심에 사로 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개역개정성경은, “오직 당을 지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함으로 생기는 가장 전형적인 증상은 이기심입니다.

 

창세기 3장, 하나님께서 숨어 있는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을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벗을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그 남자 아담이 핑계를 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어쩌다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여자가 핑계를 대면서 말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와 뱀에게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십시오. 남자는 여자에게 책임을 미룹니다. 조금 전까지도, 여자를 보고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죄를 짓고 나서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보내주신 저 여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또 뭐라고 말합니까?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하고 핑계 댑니다. 그럼으로 해서, 이제 이들은 한 몸이 아닙니다. 분명히 창세기 2:24에“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셨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겁니다. 그렇기에 타락의 가장 전향적인 증상은 이기심입니다.

 

모두가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들면 그것은 곧 선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은 곧 악입니다. 그것의 원인이나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좋으면 선이고, 내가 싫으면 악인 겁니다. 그래서 나는 잘 하고 있는데, 아무개 때문에 망쳤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했더라면 성공했을 터인데, 아무개가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4장,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원인은, 가인과 아벨이 그들 나름대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겁니다. 그러나 창세기 자체에는 왜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는지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성경 곳곳에서 가인은 믿음이 없는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믿음이 있는 제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믿음의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면, 당연히 아벨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아벨을 살려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왜 아벨이 죽고, 가인이 살았답니까?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면, 아벨이 살고, 가인이 죽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요한일서 3:11-12,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 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까? 가인이 자기가 한 일이 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한 일은 의로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아벨을 죽인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은 무엇을 말하려 합니까? 세상 모든 사람은 가인의 후예라는 겁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아담의 후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지은, 그래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곧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내리실 것입니다.”라고 하셨지만, 이기심에 사로 잡혀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8-10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때까지 악을 행했고, 지금도, 앞으로도 악을 행하며 살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나님 같이 되려는 이기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 이기심이, 이웃과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밀쳐냈습니다. 그 이기심이, 여전히 악을 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얼 하든지 악합니다.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외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죽이시기까지 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합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욕심이 많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을 행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겁니다.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도무지 성경 어디를 읽어보아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그래서 죽어야 한다는 것 밖에 없어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뭐가 좋아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어요. 우리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야 할 이유, 그것도 외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사랑해야 할 이유를 세 가지만 들어보세요. 뭐가 있나요? 그럼요. 없어요. 우리가 사랑을 받을만한 이유는 아무 것도 없어요.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롭다 함을 얻었는지, 할례를 받은 후에 의롭다함을 받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에 된 일이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된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공로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랍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함으로써 칭찬을 받든지, 사랑스럽게 여김을 받든지,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에베소서 2:1-3,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4-6절,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24-25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 가운데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4,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아버지 곧 하나님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주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이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잡아갑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모욕했습니다. 예수의 눈을 가리고 예수를 때리면서, 모욕했습니다.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추어 보아라.” 빌라도의 심문을 받았지만, 빌라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려고, 예수님을 매질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줍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머리에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양 손에 하나씩, 발은 포개어 놓고 하나를 박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 보라고 조롱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부르짖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분은 죽으시고, 장사지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그러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러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우리를 살리기 위한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 죄인인 우리를 위해 그러셨을까요? 도대체 우리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을까요? 도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예수님께서 그리 하셨을까요? 그래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났는지 못 났는지를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값이 나가는 존재인지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잘 생겼는지 못 생겼는지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권세를 어느 정도가 가졌는지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민수기 21:4 이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을 향해 가다가 에돔 땅을 돌아가려고, 호르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백성의 요청으로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그렇게 했고, 뱀에 물린 사람들은 그것을 쳐다봄으로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살았습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그리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그리 하셨습니까? 예, 구원을 얻게 하려고 그리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려고 그러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려고 그러셨습니다. 26절,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예,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정녕 여러분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십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여러분이 의롭다 하신 사람이라고 보여주겠습니까? 정말 오늘이라도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구원에 이를 줄 확신합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는 아직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때의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공중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을 살면서,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십자가는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까? 고린도전서 1: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그래서 십자가는 거리낌이요 어리석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지혜입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그들에게 구원이 될 수 없고, 그렇기에 십자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구원인데,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이제 십자가는 오히려 거리낌이요, 어리석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짐이 되었습니다. 예배드림이 짐이 되었습니다. 같은 교회에서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갈등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모습을 보십시오. 정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고 있습니까? 정말 우리의 이웃, 믿음의 형제자매를 내 몸처럼 사랑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구원받아야 합니다.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받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함으로써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받아야 합니다. 이럴 때에 선한 일이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 줄 분명히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기심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작게는 내가 구원을 받고, 나아가 우리 가정이, 우리나라가, 그리고 온 세계가 구원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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