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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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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8-05 19:10 조회 141 댓글 0
 
첨부 180805 주일설교a.mp3 (21.7M) 6회 다운로드 DATE : 2018-08-05 19:30:0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일서 4:16-21)

 


요한일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니, 성경 전체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랑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겁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기보다, 하나님 자신이 곧 사랑이시라는 겁니다. 그럼요, 우리도 압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압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도 압니다. 외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죽이시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앞서 1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지 안 그런지 아리송한 사람은, 그러니까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아직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깜깜한 어둠에 빛을 만드셨습니다.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 가운데 우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그러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는데도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왜 따먹었습니까? 뱀이 여자에게 그랬거든요.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나무 열매를 바라보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었다.” 그리고 7절,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하지만, 타락은 성적인 유혹과 관계가 없습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함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이 하나님 같이 되려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뱀은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고, 여자는 그 열매를 바라보면서 “사람을 슬기롭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함입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벌이 내려졌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22,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주 하나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흙에서 나왔으므로, 흙을 갈게 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내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아버린 사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 그래서 죽은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원히 산다면, 이것은 구원의 희망조차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첫째 아담의 죄로 인해 사람들에게 들어온 영원한 죽음에 대해,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셨습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7절,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18-19절,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21절,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범한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아니, 영원히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그 죄를 사함 받고 의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죄를 짓는 순간부터 사람을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사람이 죄를 짓는 순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늘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인가 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하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복을 받으려고 뭔가 열심히 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고선, “내가 열심히 해서 받은 복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열심히 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행함이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가 아닙니다.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8절,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10-11절,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예,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 그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믿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믿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얼 하셨기에 여러분은 믿습니까? 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외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셨습니다. 그것을 요한일서 4:9-10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점수를 한 번 계산해 보시겠습니까?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백 점 만점에 몇 점이나 될 것 같습니까? 정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백 점 만점에 몇 점이나 될 것 같습니까? 그러면 그 정도 점수면 구원을 받을 것 같습니까? 이러면, 아마도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거 하고 구원받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 거고, 사랑하는 건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7a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 ‘심판 날’은 무엇입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렇게 다시 오셔서, 영원한 구원을 얻을 사람과 영원히 멸망 받은 사람을 나누는 날입니다. 이럴 때에 그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냥 돌보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시고, 그런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습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외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하신 것이 사랑입니다. 죽으셨지만, 또한 그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 되셔서,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이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고 믿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나는 구원받았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비로소 그분은 사랑이 되심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 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순간마다 경험되어야 합니다.

 

좀 분명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만든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으므로 불 속에 던져지는 사건이 있습니다. 분명히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만든 금신상에 엎드려 절을 하지 않으면 불타는 화덕에 던져 넣는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 앞으로 끌려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서 3:16-18, “굽어 살펴 주십시오. 이 일을 두고서는, 우리가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불속에 던져도, 임금님,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신상에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굽어 살펴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들에게 이런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예,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보다 더 한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런 엄청난 두려움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속에서 건져주시고, 안 건져주시고 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이면,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지면, 불안해집니다.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16장,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옷이 찢어 벗겨지고,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발에는 차꼬가 단단히 채워졌습니다. 그 다음 날, 날이 밝으면 어떤 일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밤중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두려운 시간입니다. 불안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살려주실 것을 믿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풀려나든 풀려나지 않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보십시오. 어렵습니까? 답답합니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합니까? 이리 생각하십시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렇기에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여기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어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얼 어떻게 했다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 외아들이 우리를 위해 대속의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5: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여기 ‘실증’이라는 말은, ‘실물이나 사실에 근거하여 증명함’입니다. ‘확증’이라는 말은, ‘확실히 증명함’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확실하게 증명하셨습니다. 그 외아들을 보내시고, 그 외아들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실제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겠습니까? 요한일서 4:7-8,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실증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34-35,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11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합니다. 12절,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이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왜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한데, 오히려 동생이 한 일이 의로웠기 때문에 죽였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 때문에 서로 사랑할 줄 모르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 곧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사랑을 주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물질을 주면, 하나님께서도 물질을 주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으로 “나도 사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건 누구나 그리합니다. 또 지난날에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그리 사랑하고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그리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여기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 역시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생명으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생명으로 세상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시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시려고 우리를 죄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청파감리교회 김기석목사님이 쓴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태도>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금년 6월에 처음 나온 책인데, 거기에 ‘첫사랑’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이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 신자들이 한 일과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을 만났던, 그리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던, 그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에 대해 김기석목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랄 데가 없는 교회요 신자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살아 있는 중심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잘 정돈된 교회입니다. 하지만 불꽃이 없고, 주님을 향한 열정이 사라진 공동체에 매력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두렵습니다. 이게 나의 모습인 것 같고, 우리 교회의 모습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 우리,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사랑을 잃어버린 성도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14b-15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한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아가 세상을 살리는 곳입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아가 세상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어찌 교회라 하겠습니까? 그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그 사람을 어찌 성도라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조차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조차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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