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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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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7-15 15:12 조회 160 댓글 0
 
첨부 180715 설교cc.mp3 (24.6M) 16회 다운로드 DATE : 2018-07-16 12:47:38

지혜를 구하십시오.(야고보서 1:2-8)

 


대부분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다윗의 용맹스러움과 솔로몬의 지혜를 달라고…. 이럴 때에 다윗의 용맹스러움은 무엇이며,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인지 알고 하는 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래서 이겼습니다. 그것도 돌 하나로 이겼습니다. 사무엘상 17:50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 하나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그는 칼도 들고 가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이런 용맹을 달라고 기도할 만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용맹스러움은 다윗이 훈련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겁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전쟁에서 구원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온 세상이 이스라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다윗의 용맹스러움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의 용맹스러움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주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열왕기상 3장, 왕이 된 솔로몬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기브온에 제일 유명한 산당이 있었는데 왕은 늘 그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그 때까지 그 제단에 바친 번제물은, 천 마리가 넘었습니다. 한 번은, 솔로몬이 그 산당으로 제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는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솔로몬이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이요 나의 아버지인 다윗이, 진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그 큰 은혜로 그를 지켜 주셔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그 보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나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님의 종인 나를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그 수를 셀 수 없고 계산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백성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간구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한 지혜와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영화도 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지혜를 주님께서 주셨다는 겁니다. 솔로몬 왕은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구한 지혜는, 솔로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다스려야 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거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4:29-30,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한없이 많이 주시니, 솔로몬의 지혜는 동양의 어느 누구보다도, 또 이집트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났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런 뛰어난 지혜와 수많은 재물로 하나님의 성전도 건축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지혜로 말미암아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주변의 나라에서 많은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이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지혜는 하나님을 위해 쓰임이 될 때에, 그것은 진정한 지혜가 됩니다. 그 지혜로 하나님을 위해 쓰임이 될 때에, 솔로몬도 살고 백성들도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로 자기의 욕심을 챙겼을 때에, 솔로몬도 백성들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우리는 ‘지혜’라고 하면, 잠언 9:10의 말씀을 말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 예, 맞습니다. 우리가 방금 다윗과 솔로몬을 보았듯이, 진정한 용맹스러움과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냐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외하다’는 말은 단지 그 정도가 아닙니다. ‘경외하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6에,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아브라함이 행함이 없이 의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거리가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2장,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절,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그래서 야고보서 2:21-2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한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행함입니다. 그렇기에 믿음과 그의 행함이 함께 작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2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26절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혜와 지식을 섞어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다릅니다. 지식은 알고 있는 것이고, 지혜는 그 아는 것을 사용하는 겁니다. 지식은 오히려 사람을 어느 테두리 안으로 가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산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답니다. 그래서 지식은 얼른 계산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도 자기가 100m을 달리기도 전에 호랑이가 덮친다는 겁니다. 그런데 곁에 있는 지혜는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이 말했습니다. “소용이 없어. 그래봤자, 우리는 호랑이를 피할 수 없어.” 그러자 지혜가 말합니다. “물론 피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너보다 한걸음이라도 더 빨리 달리면 된다는 거야.”

 

그렇기에, 지혜는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지혜는 지식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14-15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예,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모르면, 구원에 이르는 지혜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4절,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엔 기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고 하는 것은, 그 시련이 그만큼 우리의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인내한다고 하는 것은 힘든 일이고,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 시련이라고 하면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보면 알게 됩니다. 시험에 빠질 때에, 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해야 할지는 살아보면 압니다. 시험이나 시련이 왜 우리에게 더할 나위가 없는 기쁨이 되는지는 살아가면서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물론, 지혜 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모두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주십니다. 다만,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편으로는 ‘된다’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합니다. 이것이, 의심하면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 물결 같은 겁니다. 이것이,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믿고 구하십시오. 더욱이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렇다면, 야고보서가 말씀하는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서 3:13-18,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지독한 이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롭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여기, 두 가지 지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그것은 육신에 속한 지혜요, 악마에게 속한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우리가 말하는 지혜의 모자람이 아닙니다. 지혜의 부족함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지혜, 육신에 속한 지혜, 악마에게 속한 지혜, 하나님을 거스르는 지혜가 문제입니다. 이것은, 마음속에 지독한 이기심과 경쟁심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그것은, 순결하고, 평화롭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평화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몇 가지 실제를 말씀합니다.
우선 차별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2-4, “이를 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 하고 말하면,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육신에 속한 악마에게 속한 지혜입니다. 이것은, 시기심과 경쟁심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이렇습니다. 야고보서 2: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에 8-9절,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가 원하는 것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2:15-17,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다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9:24에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 것은, 그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부자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욕심이, 그렇게 하지 못함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 하면서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위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여기에는 시기심이나 경쟁심, 편견이나 위선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순결하고, 평화롭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합니다.

 

그리고 혀에 대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3:1에,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실수 또한 많이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7-10,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또 길들여 놓았답니다. 그런데 사람의 혀는 누구도 길들일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그 혀는, 혀의 주인인 본인만이 길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혀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과 경쟁심, 그리고 진리를 거슬리고 속이는 심성들은 결코 그 혀를 길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 길들이려고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 어떻겠습니까? 로마서 3:13-14,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이것이 사람의 혀요, 입술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6장,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5절,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그러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으로 들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9-10절,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2:36-37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 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우리 혀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저주가 아니라 축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9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이것을 알고 이렇게 사는 것이 위로부터 주신 지혜입니다.

 

그리고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4:11-12,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 이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위로부터 주신 지혜입니다.

 

그리고 허망한 생각을 경고합니다. 야고보서 4:13-17,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먼 훗날에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담에 돈을 많이 벌면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 내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께서 그 내일을 내게 주셔야 내일은 내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오늘 선한 일을 하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오늘,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이것을 알고 사는 것이 위로부터 주신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지혜는 머리가 좋은 겁니다. 똑똑한 것입니다. 남보다 더 공부 잘하고, 남보다 더 사회생활을 잘 하는 능력입니다. 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잘 헤쳐 나가는 능력입니다. 남보다 한 걸음 더 빠른 능력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편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지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지혜가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렇기에, 야고보서의 지혜나 성경의 지혜는, 사도 바울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결과를 얻기 위한 삶의 지혜입니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19-23절,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은 육체의 행실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땅의 지혜, 육신의 지혜로, 악마의 지혜로 산 결과입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산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지혜서라고 하면,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를 말합니다. 욥기는,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는 벌을 내리시고, 의인에게는 복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분이시며 또한 가져가시는 분이심도 말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분의 의도에 따라 되어감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잠언은 수많은 지혜를 말씀합니다. 그 가운데 아굴의 잠언을 읽어보겠습니다. 잠언 30:7-9, “주님께 두 가지 간청을 드리니,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 주십시오. 제가 배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가난해서, 도둑질을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것을 알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있답니다. 그 하나는, 전도서 3:12-13,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것을 보고 기뻐하랍니다. 또 하나, 전도서 12:13,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을 알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롭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것이 위로부터 주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렇기에 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저 큰 은혜의 바다를 행해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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