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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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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6-03 21:33 조회 150 댓글 0
 

 ‘기억’(記憶)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경험되었던 것이나 인식했던 것들을 머릿속에 두어 보존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필요의 때에 되살려 내는 겁니다. 그러나 모든 경험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많은 부분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조차도 나지 않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 때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잊어졌다고 해서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의식의 세계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담겨 있는 이것에 의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않게’, ‘졸지에’, ‘갑자기’, ‘순간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반응은 이 무의식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결정한다고 할 때에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예상을 떠올리고선 결정합니다. 이럴 때 역시 무의식의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은 마치 빙산과 같답니다. 눈에 보이는 물 위의 작은 부분과 같은 의식에 비해서 물속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보이는 부분보다 훨씬 큰- 부분인 무의식의 영향이 훨씬 크답니다.


 그러면 이 무의식이 어디에 담겨 있을까요? 머릿속에 새겨둔 기억은 다시 꺼내서 의식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잠긴 것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꺼내서 의식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식이 활동을 멈추면 나타납니다. 그것을 꿈이라고도 합니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물에 대한 반응이 머리에서 명령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츠러들거나 여러 가지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이 가능할까요?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요? 사랑하기 전의 기억으로 담겨 있는데요? 이것이 내 의식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곳에 담겨 있는데요. 그렇기에 용서와 사랑은, 기억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음만 ‘그렇게 해야지’ 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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