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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새벽에(2018.4.1.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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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4-01 07:56 조회 143 댓글 0
 

부활절 새벽(로마서 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이 은혜와 능력이 우리 모두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늘 궁금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 그분은 죽으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또한 죽기 위해 세상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 결국은 죽음이니 말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입니다. 여기 삼천갑자라는 말은 60년이 삼천 번을 지나도록 살았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동방삭이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죽었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2:22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의 숨이 코에 달려있으니, 수에 셈할 가지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의 숨이 코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숨이 코에서 멈추면 그 생명은 끝이라는 겁니다. 이런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성경은 곳곳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죽음 앞에서 꼼짝도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마저도 죽음 앞에서 꼼짝도 못 하신다면, 도대체 예수님은 무슨 일로 세상에 오셨답니까? 어차피 예수님도 죽으시고, 우리도 죽을 거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뭐랍니까?

 

고린도전서 15:1-8에 이렇게 말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목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그래서 무덤에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사흗날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받았던 복음이고, 이것이 바울께서 목숨 걸고 전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목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장사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가까운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죽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살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 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살리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살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0-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엄청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29-34,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정말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지금 이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새벽에 여기 나와 앉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속지 마십시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6:1-8,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이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 곧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와 예수님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아에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 이상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또 하나,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죄와 죽음이 우리를 삼키겠습니까?

 

그러나 기억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죄는 단지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정도의 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정도의 죄는 세상 사람들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정도를 지켰다고 잘 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십계명, 그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지켜야 할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2, “내 계명을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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