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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2018.3.25.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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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3-28 09:54 조회 104 댓글 0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2:1-11)

 


빌립보서의 특징은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매장마다 사도 바울은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겁니다. 비슷한 말씀은 3:18-19a에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오히려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공동체, 곧 교회의 일치는 밖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1:27-28a,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런 외양만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구성원, 그러니까 교인 상호간의 교제에서도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기 몇 가지로 언급됩니다. 그리스도 영 안에서의 권면(격려), 사랑 안에서 나오는 위로, 성령을 통하여 이룩되는 친교(교제), 긍휼(동정심)과 자비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선물인데, 이런 선물은 이제 교회 공동체에서도 또한 효과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이런 선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그러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이것은 빌립보교회의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1:17, 복음을 전하는 데도, 시기하고 다투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27,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굳게 함께 싸우며” 그러니까, 한 정신, 한 마음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4:2에 보면,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여자이지만, 교회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밝혀서 특별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교회가 어지럽습니다. 다투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다가 심해지고, 나눔이 생기면 교회에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나눔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식을 들려주어서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은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랬겠습니까? 왜 그렇게 나누어졌겠습니까? 믿음이 달라서 그랬겠습니까? 세례를 준 사람에 따라서 그런 파가 생겼겠습니까? 아닙니다. 13절, “그리스도가 갈라지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아니지요, 어떻게 그리스도가 갈라지겠습니까? 어떻게 바울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에 달렸겠습니까? 다시 말하자면, 바울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바울이 좋아서 바울 파가 생기고, 아볼로가 좋아서 아볼로 파가 생기고, 게바 곧 베드로가 좋아서 게바 파가 생겼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내세운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는 그들이 말하는 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뭉치고, 뭉친 사람들이 자신을 나타내려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뿐입니다. 자기들 끼리 좋아서 뭉친 사람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뭉치니 그것이 싫어서 내 좋은 사람끼리 뭉친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하나 더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만이 아닙니다. 우리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합니다. 그것은 곧,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입니다. 우리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물론, 같은 생각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같은 사랑을 가진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살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아무리 성경 말씀이지만,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말씀으로 스스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여러분더러 남강을 걸어서 건너라면 건너겠습니까? 어디 한 번 걸어보려고 남강에 들어서기라도 합니까? 왜 안 합니까? 아예 걸어서 건널 수 없다는 답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이라는 결정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도조차 못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 말씀대로 할 수 있겠다 싶으면 해보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면 아예 해보려고도 안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6-27,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3:1-12,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어때요? 예수님의 말씀인데,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요? 비킬 수 없다면, 예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나요? 그렇게 살지도 못할 거 뻔히 아시면서 주신 말씀인가요? 하나 못하나 우리를 시험하시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 지킬 수 있습니다.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5절,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까? 6-8,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마음입니다. 이 낮아지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얼마든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난 못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빌립보서 4:13에서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이럴 때에 문제는, 자신은 남을 돌보지 않으면서, 왜 남들이, 교인들이 나를 돌보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겁니다. 먼저 남을 돌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우리는 남을 돌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복수하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더러 복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억울함은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을 돌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왜 나를 안 돌보느냐?”고 할 것 없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한 겁니까? 우리가 그분을 죽음에서 살려 낸 겁니까? 내가 그분을 위해 대신 죽으므로 그분이 살아나신 겁니까? 내가 그분을 믿었더니 그분이 살아나신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셔서 다시 일으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9-11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먼저 남에게 하십시오. 그럼으로 우리 자신이 평안함을 얻습니다. 우리 자신이 범사에 잘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은혜를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하나의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할 것이고, 할 수 없으면 말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입니다. 실천하면 구원이 주어지고 안 하면 죽음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 그렇게 살 때에, 낮아질 대로 낮아져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높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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