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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기 위한 기도(201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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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3-27 14:08 조회 44 댓글 0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기 위한 기도(빌립보서 1:12-26)

 


빌립보는 주전 358년/357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의 빌립2세가 세웠습니다. 도시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께선, 그의 제2차 전도여행 도중에 빌립보에 왔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보면, 바울 일행은 아시아에 가서 말씀을 전하려 했는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청하는 겁니다. 그 환상을 본 뒤에,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튼 날 네압볼리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으뜸가는 도시였는데, 로마 식민지였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며칠 동안을 묵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강가에서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모여든 여자들 가운데 루디아라고 하는 자색 옷감을 만드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 여자가 집안 식구들과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그리고 바울과 그 일행을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집이 빌립보교회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날 바울과 그 일행이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여자가 귀신이 들려서 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들에게 많은 돈벌이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바울은 그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수입이 끊어진 주인들이 화가 났습니다. 결국은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감옥에서 이런 저런 일이 있은 그 다음 날에, 풀려난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으로 갑니다. 거기에 신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40,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떠났다.” 그것이 빌립보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아주 오랫동안 바울을 도왔습니다. 빌립보서 4:15-16에 이렇게 섰습니다. “빌립보의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내가 복음을 전파하던 초기에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에게 협력한 교회는 여러분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내가 쓸 것을 몇 번 보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를 통해 복음을 듣고, 교회가 생긴 때부터 바울을 도운 겁니다.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한 교회입니다. 그 당시에 누가 그러려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해준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17-18,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회서 바울에게 보내준 것들은 선물이 아닙니다. 비록 쓰기는 바울 사도께서 썼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무엇을 보낼 때마다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그들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낸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내는 건, 개인 적인 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를 늘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빌립보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3-5,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여러분은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요,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도 바울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께 필요한 것들을 공급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음껏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에 빌립보 교인들도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늘 기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기도할 때에 누구를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들겁니다. 그러나 누구를 생각하면 걱정부터 먼저 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누구를 생각하면 기쁜 마음이 들고, 누구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그 사람도 그럴 겁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내가 감사하는 사람,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에게 감사가 되고, 내가 누구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25 이하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누가 내 이웃입니까?” 하고 물은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그것을 보고 그냥 피해서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마침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여관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사람을 잘 보살펴달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율법학자가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그러니까 “누가 내 이웃이냐?”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의 이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감사할 사람, 내가 기뻐할 사람이 누구냐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에게 감사한 사람이 되고 있는지, 내가 누구에게 기쁨이 되고 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남에게 감사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남에게 기쁨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1:9-11,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 예수 그리스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형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지금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갇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5절,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고 다투면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전합니다.” 이럴 때에 좋은 뜻으로 전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전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이 감당하고자 전합니다. 그러나 시기하고 다투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경쟁심 곧 불순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감옥에 있는 바울을 더 괴롭히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이 갇혀 있는 동안 자기네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을 겁니다. 아니면, 바울의 갇힘에서 바울의 영적 연약의 증거를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기분 나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18절,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 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간절함은 그리스도께서 전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괴롭게 할 요량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탓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한답니다.

 

그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21-22절,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에 바울 사도께서 택하고 싶은 것은, 지금이라도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께 가는 겁니다. 그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11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3: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세상에 남기를 원했습니다. 24-26절,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바울 사도의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갔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울 때문에 많아질 거랍니다. 이럴 때에 빌립보 교인들의 자랑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자랑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도우므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냈습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에 가면 그들을 칭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회의 자랑거리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풀려나서 빌립보 교회에 가면 빌립보 교회는 더욱 활발하게 선교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빌립보 교회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 사도께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파되길 원했습니다.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니까, 바울 사도의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더욱 존귀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간절한 기대요 희망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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