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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무장을 위한 기도(2018.3.26.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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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3-26 08:22 조회 179 댓글 0
 

영적 무장을 위한 기도(에베소서 6:10-20)

 


1-4절,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가르치십시오.” 여기,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 있는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첫째 판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1-4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둘째 판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5-10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에, 둘째 판의 첫 번째 계명이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 오래도록 살 것이다”라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에는 곳곳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5, “자기 부모를 때린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출애굽기 21:17,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디모데후서 3:1-9에는 마지막 때의 타락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절,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2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그러니까 말세에 어려운 때에 일어날, 그래서 정말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에 예수님께서 잃어버렸다 찾은 아들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하도 유산을 달라고 해서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둘째 아들이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그 재산을 다 탕진했을 때에,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기다렸다가,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고 잔치를 벌입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을 떠나면, 그래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참 자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관계가 멀어지자, 오히려 숫한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게 아니구나’ 싶어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자 그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백 세 시대랍니다. 그러나 아마도 제가 은퇴하고 수입이 끊어지면, 그 순간부터 전 자녀들에게 짐이 될 겁니다. 백 세를 산다면 삼십 년의 세월을 짐으로 살 겁니다. 저에게 제 부모님도 그러셨습니다. 늘 부담이 되셨습니다. 늦은 밤에 전화라도 걸려오면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이건 효자냐, 아니냐,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러면 하는 일이 잘 되고, 오래 살 것입니다.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자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거 아닙니다. 여기, 노엽게 한다는 말은 본디, 아이의 그네를 흔드는 것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재우는 그네를 부모의 마음대로 흔들어 주는 겁니다. 빨리 흔들었다가 천천히 흔들었다가, 잠이 깰 정도로 과격하게 흔들고…. 그럼으로 해서 아이들이 신뢰감을, 믿음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어떤 날에는 유리창 하나를 깨어도 괜찮다고 그랬는데, 어떤 날에는 방바닥에 휴지 하나 떨어뜨려도 매를 들고 야단을 치는 겁니다. 또 어떤 날에는 아무 말씀도 없이 넘어갑니다. 이러면 아이들의 가치관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그런 가치관으로 자라거나 눈치를 보며 자랍니다. 어느 경우든, 그 자아는 이미 병들고 만 겁니다. 그래서 똑바로 보고 똑바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늘 삐딱하게 보고 삐딱하게 판단합니다. 말을 해도 삐딱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라는 겁니다. 적어도 주님 앞에서 선 사람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삶을 살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0절, “끝으로 말합니다.” 이럴 때에 “끝으로”라는 말은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하는 말입니다. 앞에 있는 모든 말씀의 결론과 같은 겁니다. “앞에 있는 모든 말씀대로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엉망으로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세상에 어느 누가 사람을 죽이고 싶겠습니까? 이건 모두 악마의 역사라는 겁니다. 부모공경 하고 싶지요. 그런데 이런 저런 핑계를 들잖아요. 그것 또한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 정신은 어떤 경우든 부모를 공경하는 겁니다. 그러나 악마의 간계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우리는 악마의 간계에 맞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악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악마를 보기나 하셨습니까? 머리에 뿔이 나고 험악하게 생기고, 그런 건 아닙니다.

12절,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적대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도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7:18-19,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하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2-23절,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는 악한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나를 내 지체에 있는 포로로 만드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 외쳤습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시겠습니까?” 누가 건져 주겠습니까? 이 말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죄를 범하고 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1절, “악마의 간계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과 대항 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14-17절, “진리의 허리띠를 허리에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이것은 당시 전장에 나가는 완전무장한 로마 병사의 모습입니다. 주로 방어하는, 우리를 지켜주는 무기는, 진리, 의, 평화, 믿음, 구원 또는 구원에 대한 소망입니다. 공격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적절하게 작용하며 적절한 효과를 냅니다. 내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완전한 무장만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도 있습니다. 지혜와 판단력과 분별력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입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보이는 모든 것을 원활하고 능력 있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완전무장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18절,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예,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도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 게 아닙니다.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구하는 정도만이 아닙니다. 로마서 8:26-27절,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도 에베소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19-20절,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우리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좋은 동역자를 만드는 겁니다. 보세요. 전쟁에 나갈 때에 혼자 나갑니까? 군대가 움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함께 전쟁에 나갈 군대가 있습니까? 설마 혼자서 나가서 무얼 어쩌려고 하는 건 아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차피 우리는 악마와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싸우기 싫다고 해도 악마는 여러분을 그냥 두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싸워야지요. 그리고 이겨야지요. 이 영적 싸움은 나만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저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늘 기도합니다. 전신갑주를 입혀주시고, 기도하게 하셔서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기게 하소서. 악한 영과 싸워 이겨서, 저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을 구원하게 하소서. 분명한 것은,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어야 합니다.

이 새벽에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혀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기도의 동역자를 많이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악마와 싸워 능히 이기게 하옵소서. 악한 영과 싸워 능히 이기게 하옵소서.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저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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