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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분이 누구신가(2018.1.5.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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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8-01-06 07:01 조회 232 댓글 0
 
예수, 이분이 누구신가?(마가복음 4:36-41)
 
찬송 / 93장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앉으셔서 말씀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바다 곁 육지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 안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배들도 따랐습니다. 그런데 큰 바람이 불어 닥쳤고, 물이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 위기 속에서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잠에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고요하고, 잠잠 하라.” 그랬더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는 잔잔해졌습니다. 그런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서로 말했습니다.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그런데 먼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건너간 갈릴리 바다는 해면보다 약 2백 미터나 낮습니다. 보통 산의 높이를 이야기할 때 해발 몇 미터 그럽니다. 그것은 해면보다 몇 미터가 높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바라는 해면보다 2백 미터나 낮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풍랑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런 곳에 왜 저물어 가는 시간에 구태여 가시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또 하나는, 이 풍랑은 요나처럼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 만난 풍랑이 아닙니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만난 풍랑입니다. 그리고 풍랑을 만난 그 배에는 예수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마터면 죽을 뻔 했습니다. 한낮에 풍랑을 만나도 두려운데 밤중에 풍랑을 만났으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아마 그 공포는 몇 배나 더 했을 겁니다. 정말로 죽을 뻔 했다고 말해야 할 상황이었을 겁니다. 이런 위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위기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당하고 싶지 않은 위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것도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거 아닙니다.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래도 스승이라면, 지도자라면, 제자들을 평안하게 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 제가 여러분을 데리고 가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난리 났을 겁니다. 환한 대낮 놔두고 한밤중에 이게 뭐냐고 따졌을 겁니다. 아니, 아예 저는 처음부터 밤중에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 밤중에 그 바다를 건너자고 하신 것은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못 믿는다면, 언제나 불평 밖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정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는 무슨 뜻이 있을 거야. 그 뜻이 무엇일까?” 하고 그 뜻을 묻게 될 겁니다.
 
때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풍랑으로 인도하십니다. 저는 신앙생활 하면서 이 말이 참 싫었습니다. 왜 풍랑으로 인도하신단 말입니까? 왜 고난으로 인도하신단 말입니까? 가난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내게 돈을 많이 주시면 그 돈으로 오로지 주님을 위해 일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는 겁니다. 기적같이 돈을 주시기만 하면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하겠는데 왜 안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돈을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배는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그 교회 공동체가 만난 것이 풍랑입니다. 처음교회는 엄청 고난을 당했습니다. 박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목표도 있고, 예수님께서 함께 타셨는데도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더더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그 고난에서도 오히려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죽을 지경인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삶이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주님의 응답은 없습니다. 조용합니다. 무슨 기미조차 없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시나 보다. 곧 일어나시겠지.”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믿음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걱정하지 마, 지금은 예수님이 주무시지만 곧 일어나실 거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가끔 당신을 따르는 일에는 박해도 따른다고 하셨으니 웬만한 고난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의 말씀을 따랐는데도 풍랑이 왔습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대도 아픔이 왔습니다. 많은 학대가 있고 불의가 판을 치는데도 주님의 도움은 보이지 않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공포의 순간임에도 예수님의 도우심은커녕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계실까? 무엇을 하고 계실까? 왜 내 아픔에 아무 말씀도 없으실까?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 있을까? 자식이 죽음 앞에서 절규하는데 어떻게 아버지라는 분이 들을 척도 안 하실 수 있을까?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는데 어떻게 아무 말씀도 없으실까? 하박국 1:13, “주님께서는 눈이 맑으시므로,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며, 패역을 보고 그냥 계시지 못하시는 분이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조용히만 계십니까?”
 
견디다 못해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은 제자들의 문제에 모른 척 하고 계셨을까요? 제자들이 죽을 지경이 되어서도 당신의 평안함을 위해 잠을 자고 계셨을까요?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 모른 척 하고 계실까요?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곤 바다를 향해 꾸짖으셨습니다. “고요하고, 잠잠 하라.”
 
어떤 교인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누군가 저에게 들려주면, 경우에 따라 그 교인이 저에게 자기의 일에 대해 직접 말하기 전에는, 저는 그 무슨 일이 있는 교인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궁금해 할 겁니다. 그러나 침묵했다고 해서 무관심 한 거 아닙니다. 언제나 눈여겨보고, 언제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겠습니까?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아무 말씀이 없다하여 아무 말씀도 없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지켜주십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시자 바람이 멈추었습니다.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왜 제자들이 죽을 뻔 했습니까? 풍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풍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비가 와서 우산이 필요한데 나막신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가지십시오.
 
40절,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이 40절의 말씀으로 이렇게 내게 물어봅니다. “이런 풍랑 속에서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잠이 들었다고 해서 너희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줄 알았느냐?” “내가 너희를 죽음에 내버렸다고 생각했느냐?” “내가 너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주님이신 것을 잊었느냐?” “내가 그동안 너희에게 한 말과 너희에게 보여준 그 모든 것을 잊었느냐?”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믿음이 무언지 아십니까? 참 믿음은 어려움 속에서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계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겁니다. 믿음은, 오히려 바람과 바다조차도 잠잠케 하시는 그분의 도우심을 힘입어 풍랑을 향하여 “고요하라. 잠잠 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에, “살려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보다, 여러분의 문제를 향해 외치십시오. 잠잠하라고 외치십시오. 고요하라고 외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말씀 한 마디로 바람과 바다 잠잠하게 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제자들이 이 풍랑에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41절,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이분이 누구시기에.” 그래서 이 분 곧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여러분에게 있어 이 분은 누구십니까? 바람과 바다도 그 분에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믿음은 그분이 누구신가 라는 물음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어려울 때에, 고민하기보다, 슬퍼하기보다, 낙심하기보다, “예수, 그분은 누구신가?” 하고 물어보십시오. 힘들 때에, “예수, 그분은 누구신가?” 하고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고난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고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엄청난 시련의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권능의 창조주십니다.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과 권세를 주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8년 새해에, 교회는 세상을 향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외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주신 불 믿습니다.
 
찬송/ 356장
기도/
 1) 믿음을 주옵소서.
 2)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3)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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