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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통한 회복(2017.12.28,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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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7-12-28 14:03 조회 211 댓글 0
 
예배를 통한 회복(느헤미야 8:1-12)
 
찬송가: 312장

우선 그들은 일곱째 달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태양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하는 달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일곱째 달은 ‘티시리월’이라고 하며, 새해의 첫 달인 1월에 해당합니다. 이 달에는 여러 가지 절기가 많았습니다. 나팔절(1일), 대속죄일(10일), 초막절(15-22일)과 같은 절기가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새해를 기념하는 절기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그러니까 누가 시켜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이나 어떤 유능한 지도자가 시켜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일반 백성인 그들이 스스로 모였습니다. 여기 1-12절까지 보면, ‘모든 백성’이라는 단어가 10회 이상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이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백성들입니다. 에스라가 등장한 것은 그들의 초청에 의한 것입니다.
 
에스라 9장에서도 보면,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마저도 이방 백성들과 관계를 끊지 않았고, 가나안 원주민들과도 역겨운 일을 따라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의 여러 족속의 피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핏줄에 섞여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도자와 관리라는 자들이 오히려 이런 일에 앞장을 섰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라는 너무 기가 막혀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으면서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이 에스라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에스라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에스라 10:1, “이스라엘 사람도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많은 무리가 에스라 주변에 모여서, 큰소리로 슬피 울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백성들이 먼저 모였습니다. 그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라고 청합니다. 그래서 에스라 제사장은 모세의 율법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수문 앞 광장이었습니다. 이곳은, 느헤미야 3:26을 참조하면, 느헤미야가 재건한 예루살렘 성벽의 동편 성문에 있었고, 기혼 샘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3:26, “오벨에 살고 있는 성전 막일꾼들이, 동쪽 수문 맞은 쪽, 쑥 내민 망대가 있는 곳까지 보수하였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된 곳은 성전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성전에서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성전이 무너진 뒤, 혹은 타향에서는 회당에서 말씀이 낭독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수문 앞 광장에서 말씀이 낭독되었습니다. 그건 이렇습니다. 성전 안에는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성전 경내는 남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문 앞 광장은, 모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리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 안에서 만이 아니라 어디서나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 책을 읽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의 3차 포로 귀환이 있기 14년 전에 2차 때 귀환한 사람들과 함께 온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16대 후손입니다. ‘학사’라는 말은 서기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포로기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주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단 위에 섰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율법 책을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들은 모두 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경배하였습니다. 백성의 주변에 레위 사람들이 있어서 에스라가 읽어주는 말씀을 통역했습니다. 당시 통용어는 아람어인데, 성경은 히브리어로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사실 지쳐있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오늘 우리식으로 계산하면 주전 445년 10월입니다. 이 때는 이미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성전은 주전 538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주전 515년 4월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니까 23년 동안 공사한 셈입니다. 주전 445년은 느헤미야가 주동이 되어서 성벽을 수축하던 때입니다. 일이란 하면 할수록 지치고 나중에는 탈진하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조차도 힘들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교회 일을 쉬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일은 쉬면 회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쉬면 쉴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사실은, 교회 일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세상 일이 더 바쁘고 복잡해서 힘든 겁니다. 그런데 세상일을 쉬기보다 교회 일을 쉬려고 합니다. 아마 세상일을 쉬면 수입이 줄어들지만, 교회 일은 쉬어도 손해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나 오히려 신앙이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어떻게 회복하게 되는지를 알려 줍니다.
 
우선,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면 예배부터 쉽니다. 예배드림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예배드림을 쉬면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드림을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여기에 나와 앉았다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나오는 것보다, 그 시간에 잠이라도 자두면 육신이 회복이 되리라 생각하는 겁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보세요. 육신은 지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지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도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은 지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적으로 뭐가 어떻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는 지치지도 않으시고, 지칠 수도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의 영이십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요 능력이 되십니다. 그렇기에 성령께서 주관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삼서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이럴 때에 영, 그러니까 영혼은 외적 일과 구별되는 내면적인 것을 지칭하는데, 신적 진리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면적 삶을 특별히 지칭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영,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해야 내 영혼이, 내 내면이 평안해지는 거 아닙니다. 내 영혼이, 내 내면이 평안해야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해지는 겁니다. 거꾸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내 영혼, 내 내면이 평안해야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영혼이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4절,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쁜 일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6절, “그들은(그러니까, 3절의 신도 몇) 교회의 회중 앞에서 그대의 사랑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잘 보살폈습니다. 그래서 가이오에게는 진리와 사랑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영혼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진리와 사랑은 어디서 비롯됩니까? 예배입니다. 물론 세상도 진리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랑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조차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와 사랑이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와 사랑과 같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며, 왜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말씀과 같은 겁니까?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이 세상에서 보여준 사랑과 같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이 진리와 사랑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배우고, 훈련하고, 터득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로 우리 탈진의 원인이 되는 ‘말씀의 기갈’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힘듭니까? 왜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말씀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본문의 유다 사람들은 누가 시킨 거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몰려왔고, 에스라에게 말씀을 읽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멸망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5b-17,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 백성들은 새해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첫날로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규례대로 성회를 열었다.” 말씀을 들었고,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그들이 왜 고통을 나라를 잃어버리고,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가야 했는지를 말씀을 들으며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율법서 중에 신명기를 잃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기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되어 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이 날은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즐거움으로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축제였습니다. 17절,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모든 사람이 초막을 세우고 거기에 머물렀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렇게 축제를 즐긴 일이 없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즐거워하였다.” 이것이 참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친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새해에 해당하는 1월 설날에 함께 모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힘 있게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힘들고 지쳤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말씀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새해를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새해엔 더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지혜요 능력이 되실 것입니다.
 
찬송가: 292장
 
기도:
1) 예배를 회복하게 하소서.
2) 말씀을 사모하게 하소서.
3) 말씀의 은혜와 능력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새해를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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