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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이 없으신 하나님(2017.12.27.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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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7-12-27 08:08 조회 133 댓글 0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이사야 43:1-7)
 
찬송: 312장
 
야곱과 이스라엘은 같은 의미입니다. 야곱이 곧 이스라엘이니 말입니다. 일찍부터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참 대단한 민족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민족이 있습니까? 그 가운데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요,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민족이 이스라엘 말고 또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고, 또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한 민족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비록 그들이 이집트로 들어가서, 노예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왜 이집트로 간지 압니다. 그 땅이 온통 기근이 들었을 때에, 먼저 이집트로 간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이집트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고센 땅에서 아주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하는 바람이 그들이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고생도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이집트를 떠나려 했겠습니까? 그렇게 고생스러우니까, 광야라도 좋다고 떠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집트에서의 고생도 하나님의 은혜인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히브리 민족이었습니다. 자기 나라를 가지고 있지 못한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왕을 세웠습니다.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겁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많은 전쟁을 겼었고, 끝내 나라를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토록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성전이 적군에 의해 무너져버리는 일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빌로니아라는 나라로 포로가 되어서 끌려갔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이라크의 아래 쿠웨이트가 있는 곳이 바빌로니아입니다. 그러니 그 먼 거리를 포로로 끌려간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토록 사랑하신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이사야 42:18-22에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귀가 먹은 자들아, 들어라. 너희 눈이 먼 자들아, 환하게 보아라. 누가 눈이 먼 자냐? 나의 종이 아니냐! 누가 귀가 먹은 자냐? 내가 보낸 자가 아니냐! 누가 눈이 먼 자냐? 주님과 언약을 맺은 자가 아니냐! 그는 많은 것을 보았으나,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귀가 열려 있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 주님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율법과 교훈을 존중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지금 그의 백성은 약탈과 노략을 당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구덩이 속에 갇혀 있고, 감옥에 갇혀 있다. 그들이 약탈을 당하였으나, 구하여 주는 자가 없고, 노략을 당하였으나 노략자들에게 ‘돌려주어라’ 하고 말해 주는 자가 없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7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내주어 너를 구속하겠고, 너를 구속하려고, 너 대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내주겠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너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내주고, 너의 생명을 대신하여 다른 민족을 내주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동쪽에서 너의 자손이 오게 하며, 서쪽에서 너희를 모으겠다. 북쪽에다가 이르기를 ‘그들을 놓아 보내어라’ 하고, 남쪽에다가도 ‘그들을 붙들어 두지 말아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부터 오게 하고,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여라. 나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기가 막힐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귀가 먹은 것 같았던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눈이 멀었던 것 같았던 사람들. 그래서 결국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속량하였으니” 이럴 때에 ‘구속’ 혹은 ‘속량’이라는 말은, 가족 가운데 빚을 갚지 못해 노예로 팔려간 사람을 속전을 지불하고 해방시켜서 데려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빚 때문에 밭이 빼앗겼을 때에, 가장 가까운 친족이 빚을 대신 지불하고 밭을 찾아올 때에, 이 사람을 구속자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 속량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빚을 지불하고 그들을 해방시키셨다는 겁니다.
 
그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이집트를 대신 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대신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만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명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선,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믿습니까?
 
사도바울은 그랬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별로로 여기나 봅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눈을 감았습니다. 아니, 우리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여전히 맹인과 같이 보지 못하고, 여전히 귀 먹은 사람같이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그러고 있습니다. 오히려 애써 보려고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벗어나려고 그러는데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죽이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분의 생명을 대신 주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예,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절,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7절, “나에게 영광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이럴 때에 창조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심이라기보다 특별히 당신의 백성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를 새로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맹인과 같습니다. 우리는 듣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자신의 가문과 배움에 대해 말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복음을 전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30,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가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고후 12:9)라는 그의 고백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됩니다.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걸 좋아하십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간섭으로 여깁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뭔가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다.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누가 여러분이 고난의 물 가운데로 걸어갈 때에 함께 걸어가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물 가운데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불 속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땠습니까? 많이 힘들었지요? 많이 답답했지요? 마치 물 가운데를 걷는 것 같았지요? 마치 불 속을 걷는 것 같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새해를 향해 달려갑시다. 주님께서 우리게 주신 저 새해를 향해 나아갑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새해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찬송가: 351장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멀었고 귀가 멀었던 우리를 용서하소서.
2) 이제 다시 하나님의 대속하심과 그 사랑을 확신케 하소서.
3) 지난날에 얽매여 애통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새해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4) 그 걸음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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