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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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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7-06-05 07:17 조회 123 댓글 0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복음 5:13-16)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성경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는 갈릴리 호수 위를 걷는 '기적'을 행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도 실제로 물 위를 걷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위를 일컬어 '기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예수 존재의 남다름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되는 그 성경 속 구절은 훗날 어리석은 한 목사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말았다.
14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언론 헤럴드 짐바브웨와 데일리포스트 나이지리아는 짐바브웨의 한 교회 목사가 저지른 심각한 잘못과 그로 인한 끔찍한 결과를 보도했다. 지난 13일 오전 조나단 음테트와 목사는 악어들이 득시글거려 '악어강'으로 통하는 곳으로 자신의 신도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성서의 기적을 재현해보겠다고 큰소리쳤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음테트와 목사는 강물을 헤치고 약 30m 정도 걸어가던 중, 수면 위를 걷는 시도를 하기도 전에 갑자기 나타난 악어 3마리에 의해 공격당했고,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의 신도였던 데코 은코시는 "그는 지난 주말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 설교하면서 우리에게 그가 갖고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겠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결국 그는 3마리의 거대한 악어에 의해 불과 2~3분 사이에 피해를 당했고, 시간이 한참 지나 그의 샌달과 속옷만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음테트와 목사는 일주일 내내 단식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신고를 받은 긴급구조팀이 30분 만에 출동했지만, 목사는 이미 숨지고 난 뒤였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이 목사님의 믿음이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결과적으론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목사님의 믿음을 잘못된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에. 2)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 때문에. 그러니, 그렇게 하다가 죽은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우리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사도행전 3장,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걷지 못했던 걸인. 베드로와 요한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랬으니, 그, 사람이 일어난 겁니다. 만약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늘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도무지 그렇게 될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세상의 소금입니까? 우리 때문에 세상에 맛깔 나는 세상입니까? 우리가 세상의 빛입니까? 우리 때문에 세상이 환한, 살만한 세상입니까? 맛깔나기는커녕, 나도 죽을 지경입니다. 살만한 세상을 되기는커녕, 나도 어두움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우선 내 코가 석 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는 내 삶도 내가 어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짓밟힐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맛을 내지 못해 바깥에 내버려진 소금과 같다는 겁니다.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있으나 마나 하다는 말입니다. 이건,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하지 않으신 겁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하지 않으신 겁니다. 만약 “되어라” 하셨다면 우리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로선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금이다”, “빛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소금이 되었고, 빛이 되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요한복음 1: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9-12절,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빛이 되었다는 겁니다. 소금이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권세, 곧 특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권세’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엑수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능력’, ‘특권’, ‘힘’, ‘재능’ 등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다면, 그에게는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능력, 힘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다면, 역시 세상의 빛으로서의 능력과 힘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소금이 된 겁니다. 빛이 된 겁니다. 그러면 소금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면 됩니다. 빛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면 됩니다. 그렇기에 ‘엑수시아’ 곧 권세, 특권은 ‘영향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되었으니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소금이 되었으니 맛을 내라는 겁니다. 빛이 되었으니 주변을 밝히라는 겁니다.
 
보세요. 소금이 되었으니 녹아지기만 하면 됩니다. 빛이 되었으니 가만히 있어도 주변이 밝아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또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빛을 가리지만 말라는 겁니다. 제대로만 살라는 겁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살라는 겁니다. 달리 무얼 해보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소금이면 소금으로 살면 되고, 빛이면 빛으로 살면 되는 겁니다.
 
이 말은 곧 남을 위해 살면 된다는 겁니다. 소금도 그렇고 빛도 그렇습니다. 소금은 주변의 맛을 냅니다. 빛은 주변을 밝힙니다. 그러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소금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맛을 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빛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를 밝혀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더 짜고, 내가 더 밝아지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16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만약, 창세기 39장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셔서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해서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아, 하나님께서 너를 형통하게 하심으로 우리 집이 복을 받았구나!” 이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이것이 소금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빛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니다. 이것이 빛으로 오신 우리 주님께서 모여주신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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