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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시는 하나님(2017.1.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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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7-01-04 11:22 조회 267 댓글 0
 
지키시는 하나님(시편 127:1-2)
 
찬송가/ 446장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된 일이다.” 이럴 때에 ‘집’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집으로 이해할 수 있고, 가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운다’는 말 역시 집을 세운다는 말도 되고, 가정을 세운다는 말도 됩니다. 모든 사람의 애쓰고 수고함은 어쩌면 집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머물 집이 있어야 하고, 함께 사는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집을 세우려고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사람의 수고는 헛되다는 겁니다. 성, 작게는 진주성 같이 작은 성이고, 크게는 나라입니다. 옛적에는 파수꾼들이 망루 또는 성벽을 따라 돌면서 밤낮으로 성을 지켰습니다. 지금은 군인들, 그리고 최점단 전자기기,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나라를 지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사람이 지킨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이랍니다.
 
2절의 말씀은, 사람의 모든 노동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그러니까 늦게까지 먹고 살려고 수고하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시면 사람의 수고는 헛된 일이랍니다. 여기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는 말씀은, 새 번역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그렇다고 해서, 집, 가정을 세우기 위해 애쓰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성, 곧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시니 그저 잠만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집, 가정을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성, 곧 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일이 되고,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가복음 4:26-29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이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서 알찬 낱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농부는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씨는 농부가 모르는 사이에 자랍니다. 심지어 농부가 잠자는 사이에도 자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 옛말에 “지키는 열 사람이 한 명 도둑을 못 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도둑을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빈틈이 있다는 겁니다. 완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VIP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뭐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귀한 손님을 대접하느라고 음식을 만드는데, 그날따라 평소 잘하는 밥이 엉망이 되었다는 겁니다. 유능한 간호사가 어떤 경우든 정맥주사를 놓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는데, 평소 존경하는 어른에게 정맥주사를 놓을 때는, 정맥을 찾지 못해서 쩔쩔맨다는 겁니다. 하여간 뭔가 잘 해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실수 연발인 겁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누구나 허술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됩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성을 지킨다고 수고하는 파수꾼의 수고가 헛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단속만 잘 하면 도둑이 어찌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만 하면 뭐든지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121:1-8,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낮의 빛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을 우리 이렇게 읽어보겠습니다. 3-8절까지 “너”를 모두 “나”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나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라.” 4절의 ‘이스라엘’도 ‘나’로 바꿉니다. 1절부터 읽겠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시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키시는 것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십니다. 나를 보호하십니다. 헛발을 디디지 않게 도와주십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십니다. 모든 재난에서 지켜주십니다. 내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내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오히려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더 불안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킬 수 있는 능력에서 넘었다고 싶으면 그 순간부터 불안합니다.
 
시편 91:1-8, “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너는,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를 것이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정녕 주님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죽을병에서 너를 건져 주실 것이다. 주님이 그의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님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밤에 찾아드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흑암을 틈타서 퍼지는 염병과 백주에 덮치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오른쪽에서 천 명이 넘어지고, 네 왼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네게는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오직 너는 너의 눈으로 자세히 볼 것이니, 악인들의 보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네가 주님을 네 피난처로 삼았으니, 가장 높으신 분을 너의 거처로 삼았으니, 네게는 어떤 불행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네 장막에는 어떤 재앙도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네가 가는 길마다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니, 너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짓밟고 다니며, 사자 새끼와 살모사를 짓이기고 다닐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 ‘너’를 ‘나’로 바꾸어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16절, “그가 나를 사랑하니, 내가 그를 건저 주겠다.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내가 그를 높여주겠다. 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내가 그를 건져 주고,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 내가 그를 만족할 만큼 오래 살도록 하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겠다.” 여기 ‘나’, ‘내’라고 하는 호칭은 누구입니까? 예,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답니다. 높여주고, 응답하고, 고난을 받을 때에 함께 있겠다 하십니다. 건져주고, 영화롭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만족할 만큼 오래 살게 하시고, 당신의 구원을 보여 주시겠답니다. 누구에게?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입니다. 로마서 8:28-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장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6:22-2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빌라고 하여라.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 빕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서로 축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내 가정이 건강하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내 나라가 굳건하다면 우리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지금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무슨 검사들이 수사하지 않아도 왜 이리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욕심입니다. 그런데 이 욕심이 최순실에게만 있는 겁니까? 심지어 나라를 살리겠다고 나선 대권주자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겁니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이 악행은 여전히 계속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하셨다면, 이제 우리 모두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입니다.
 
물론 촛불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이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화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또 하나의 욕심이 된다면 촛불은 나라를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이것을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면, 촛불은 오히려 나라를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 겸허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마치 니느웨 사람들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십 일이 지나면 멸망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회개했습니다. 왕에서부터 온 국민에게 이르기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의 손을 거두어들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삽니다. 그래서 우리의 집, 우리의 가정이 삽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살려주셔야 나라가 삽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살려주셔야 가정이 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셔야 내가 삽니다. 이 새벽에 우리의 기도가 나라를 살립니다. 이 새벽에 우리의 기도가 가정을 살립니다.
 
찬송가/ 4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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