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





예배와말씀
목회단상    |  예배와말씀  | 목회단상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2017.1.3. 새벽)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7-01-04 11:19 조회 410 댓글 0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로마서 12:1-8)

찬송가/ 96장

모든 사람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 챙겨 먹고, 운동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해서 오래 살면 무얼 합니까?”라고 물으면, “아닙니다. 오래 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려고 그럽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요즘 최고로 인기가 있는 의사들은 성형외과 의사라고 합니다. 외과의사로 지원하는 의대생들이 줄어들어서, 앞으로 맹장 수술 하나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거 아닌가 걱정하기도 합니다. “자기 외모에 비교적 만족하며 삽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런대로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19% 정도랍니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치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남자들의 94%, 여자들의 99%가 고치고 싶다고 했답니다. 아마도 저한테 물었으면 저도 “고치고 싶다”에 퍼센트를 올렸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떻게 생겼든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고흐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까? 파불로 피카소의 그림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때로 이들의 그림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냥 휘휘 저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가격은 엄청납니다. 한 점에 수십억, 수백억을 호가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름난 화가가 그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나요?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학자 등등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귀신들린 거라사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돌로 제 몸의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그는 군대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귀신을 그에게서 쫓아내셨습니다. 이 사람이 멀쩡해져서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그리고 배를 타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셔서,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자를 고치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마가복음 7:24-30에서는 사로페니키아 여자가 자기의 귀신들린 딸을 살려달라고 할 때에, 역시 살려주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여자가 자기 집에 돌아가서 보니, 딸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8:22-26에서는 벳세다의 눈먼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하여간,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된 거 아닙니까? 그러면 병이 들면 어떻고, 아프면 어떻습니까? 몸이 좀 불편하면 어떻고, 장애가 있으면 또 어떻습니까? 또, 예수 믿는다고 해서 다 고침 받은 것도 아니잖습니까? 만약 예수 믿음으로 해서 다 고침 받는 거라면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아파하는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아파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어디 핑계 댈 때나 아프다고 하지, 평소엔 아프다는 내색도 안 합니다. 혹시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아파한다고, 그래서 믿음이 없다고 할까 싶어 숨기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아픕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마가복음 9:14-29에, 귀신 들린 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는 동안 아홉 명의 제자들이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아내려 했는데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말합니다. “하실 수 있으시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믿음이 없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포기합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 기도가 부족해서, 혹은 내 기도에 능력이 없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포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이러면 우리는 또 고민합니다. 물론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거냐는 겁니다. 3-8절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삶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아마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알 겁니다. 보병은 아침부터 뛰고, 구르고, 총 쏘고, 기합도 받고 그럽니다. 행정병들은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행정을 봅니다. 정비병들은 하루 종일 기름칠하고, 닦고, 조이고, 그럽니다. 하여간 주어진 일에 따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면 누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까? 사무실에 앉아서 행정만 보는 행정병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가 아닙니다. 다 자기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거 하면 됩니다. 그것이 군인으로서 나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의 쓰임이 되고자 하는 겁니다. 늘 “주님, 나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의 일에서 자꾸만 꽁무니를 뺍니다. 아프다고, 가난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하여간 안 되는 핑계를 댑니다.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합니다. 자꾸만 편해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안 해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안 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아프고, 가난하고, 시간이 없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일만 생기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 먼저 무얼 해주기를 원합니다. “무얼 어떻게 해주시면, 내가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수 일을 하셨던 저의 아버지는 연장을 모두 고쳐서 쓰셨습니다. 대패 바닥에 갈라지면 나비 모양의 쐐기를 박아서 다시 쓰셨습니다. 톱이 무디어서 잘 들지 않으면, 줄로 그 톱날 하나하나의 날을 다시 세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쓰다가 망가지거나,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면 버립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고쳐 주십시오. 사람도 연장이 망가지면 고쳐서 씁니다.” 저는, 우리가 망가지면 하나님께서 고쳐서 쓰신다고 믿습니다. 절대 버리는 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사야 41:14에서,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16절, “내가 너를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들 터이니, 네가 산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언덕을 겨로 만들 것이다. 네가 산들을 까불면, 바람이 그 가루를 날려 릴 것이며, 회오리바람이 그것들을 흩을 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나 주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며,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 6:56,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예, 그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병도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그래야 하느냐?”는 겁니다. 왜 우리의 병이 고쳐져야 한다고 여러분은 믿습니까? 에베소서 2: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 일을 위해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2017년, 건강하십시오. 질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주님의 거룩한 일에 힘쓰십시오.
 
 
찬송가/ 471장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설교
금주의 찬양
교회주보

인사말씀

비전및표어

예배안내

교회연혁

섬기는분들

오시는길

포토앨범

교회소식

행사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