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





예배와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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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게시물 131건 / 5페이지
    관리자
    2011-03-06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은혜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도 고백합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의 은혜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지만, 사실은 내 뜻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로마서 7:15, 17) 그렇다면 죄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내 나름대로 삶의 법칙을 세우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마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것이 죄의 본성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맞다, 틀리다 말해 주는 것도 싫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처리하기를 원하니까요. “내 인생, 내 가정, 내가 다니는 교…
    관리자
    2011-03-06
    「철학시간의 주제는 신이었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을 만져본 사람 있어요?” “그럼 하나님을 본 사람 있어요?” 학생들은 모든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렇다면 신은 없는 겁니다.” 그러자 학생 하나가 응답하겠다고 나섰다. “교수님의 두뇌의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어요?” “교수님의 두뇌를 만져본 사람 있어요?” “교수님의 두뇌를 본 사람 있어요?” 학생들은 물론 교수도 묵묵부답이었다. “교수님의 논리대로라면 교수님에게는 필시 두뇌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 과학이란 찾아보고, 실험하고, 그래서 증명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소리를 들어야 하고, 만져보아야 하고,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볼 수 없으면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관리자
    2011-03-06
    월간 ‘프리칭’ 2009년 3월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패스트푸드점이 많은 동네에 살면 뇌중풍 위험이 13%높아진다는 겁니다. 미국 미시간 대학 신경학과 루이스 모겐스턴 교수 팀이 텍사스 주 뉴에세스 카운티를 대상으로 2000년 1월부터 2003년 6월 기간 동안의 허혈성 뇌중풍 발생 빈도와 동네별 패스트푸드점 숫자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패스트푸드점이 가장 많은 동네가 가장 작은 동네에 비해 허혈성 뇌중풍 위험이 13% 많았다는 겁니다. 또한 패스트푸드점이 한 개 늘어날 때마다 뇌중풍 발병도 1%씩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이런 글도 있습니다. 마늘과 콩을 재배하는 지역에 한국의 100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광대 보건대학원 김종인 교수팀은 2001년도 한국과 호주의 통계청 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두 국가에 사는 100세 이상 장수 노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환경적 요인을 비교 연구한 결과, 한국은 콩과 마…
    관리자
    2010-12-14
    문명과 담을 쌓고 사는 어느 오지의 원시 부락에 들어간 탐험가는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자연과 동화된 원주민의 순박한 삶에 넋을 빼앗기고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남지 않았답니다. 어느 날,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체구의 남자 두 명이 서로 결투를 하는 장면을 보았답니다. 두 남자는 서로 살기등등하여 상대를 노려보았고, 상반신을 드러낸 두 남자는 당장이라도 상대에게 덤빌 태세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무기는 창도 아니고 칼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공작의 깃털이었습니다. 그 결투는 깃털을 가지고 상대방을 간질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분을 삭이지 못하던 두 결투자의 표정은 서서히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한 남자의 입에서 먼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결투는 막을 내렸고, 두 남자는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은 후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
    관리자
    2010-12-14
    동아일보 오피니언에 95세 노인의 후회가 실렸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히 은퇴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은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
    관리자
    2010-09-26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소중히 여깁니다. 오죽하면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겠습니까? 그렇기에 그 이름을 아무렇게 짓지 않습니다. 한자로 된 이름을 풀어보면 그 아이에 대한 부모의 바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라는 영화를 보면 인디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머리를 스치는 바람’, 혹은 ‘주먹 쥐고 일어서’와 같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고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그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께 나아가 자기 딸을 고쳐주기를 간청합니다. 대답도 없는 주님께 끈질기게 간청합니다. 주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개’라고 이름 불린 여인, 그러나 이 여인은 자기를 ‘개’라고 불러주는 그 이름에 개의치 않았습니…
    관리자
    2010-09-21
    “마음 속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몇 만 권의 책을 읽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해도 마음을 경작하지 않는다면 단지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탈무드)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그 신앙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속내를 바꾸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단지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 삶에, 그리고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럼에도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움켜쥐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일단 움켜쥐면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조차 인색합니다. 기도조차 자기 욕심으로 하니 말입니다.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그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는 겁니다. 모든 죄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부터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
    관리자
    2010-09-12
    장관의 딸을 특채했다는 것으로 떠들썩합니다. 장관인 그 아버지는 그 유명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집뿐만 아니라 좀 힘이 있다는 사람들이 많이 그랬나 봅니다. 지방도 예외는 아닙니다. 성골(聖骨), 진골(眞骨), 해골(骸骨)이라는 유행어도 있습니다. 해골은 백 날 뛰어봐야 해골입니다. 성골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안 되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진골이나 성골이 되고자 합니다. 돈을 많이 벌든지, 공부를 잘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든지...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탓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일종의 부러움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이 상대적으로 가련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굴 탓할 수 없는 겁니다. 나 때문입니다. 목사가 살면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면 세상이 밝아집니다. 그런데 교회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목사 수난시대입니다.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목사와 교인들 때문입니다. …
    관리자
    2010-09-05
    동해바닷가 장터에 한 할머니가 생선 몇 마리를 잘 말려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하도 깨끗하게 말리고 맛있어 보여 할머니께 제안했습니다. “할머니, 이거 다 얼마예요? 다 주세요!” 할머니는 즉각 대응하셨습니다. “안 돼, 이거 다 주고 나면 난 오늘 뭘 하고 살어!” 다 팔고자 하는 것이 할머니의 삶이 아니라, 그렇게 팔고 있다는 것이 할머니의 삶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이 내 삶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내 삶입니다. 산다는 것은 다 살았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숨을 쉬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뒤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지 못하면 먼 훗날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지…
    관리자
    2010-08-23
    “미친 운전자가 행인을 치고 질주할 때 목사로서 사상자를 돌보는 것보다 운전자의 핸들을 빼앗아야 한다.”며 히틀러의 암살 계획에 참가했다가 사형당한 독일의 디트리히 본 회퍼(1906-1945) 목사의 말은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인용합니다. 소위 독재라고 판단되면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항거합니다. 문제는 무엇이 독재냐는 겁니다. 누가 미친 운전자냐 하는 겁니다. 누가 그것을 판단하느냐 하는 겁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나름대로의 주장이 있고, 그렇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다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상렬목사가 이북에 다녀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김정일을 찬양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든 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남쪽에서 만들어낸 조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당당히 판문점을 통해 내려왔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 땅에서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고자 …
    관리자
    2010-08-15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여행을 하던 중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집 앞을 지난 때에, 한 여자 아이가 톨스토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겁니다. “얘야, 뭘 그렇게 보고 있니?” 톨스토이가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소녀의 얼굴은 매우 창백하고 병색이 짙었습니다. “가방…….” 소녀는 가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톨스토이에게 그 가방을 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습니다. “아저씨, 그 가방 저 주시면 안 돼요?” 백합꽃 수가 놓인 그 가방은 친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기에 톨스토이는 매우 난처했습니다. 게다가 가방 속에는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소품들이 담겨 있습니다. 소녀는 어머니를 조르기 시작했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계속 있다가는 더 난처해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은 톨스토이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그 아이의 집을 찾은 톨스토이는 사흘 뒤에 그…
    관리자
    2010-08-08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기대가 충족되면 그 사람의 삶은 그래도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가깝지 못하면 그 자식이 잘하든 못하든 부모에게 근심거리가 됩니다. 부모가 자식의 기대에 가깝지 못하면 부모는 잘하든 못하든 자식에게 불평과 원망이 됩니다. 대통령과 국민, 선생과 학생, 목회자와 교인 등등 모두가 자기의 기대치를 가지고 바라보고 또한 판단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그 기대는 개인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에 들면 좋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쁘다.’라는 생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동의 이익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서의 비유에서,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아주 잘 만드시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들포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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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01
    사람이 죽어 심판대 앞에 섰는데, 그들을 심판하는 일이 쉽지 않답니다. 거기에 기록된 용모와 그 앞에 선 용모가 달라서 대조하기가 힘들다는 거지요.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용모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예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려고 합니다. 의사들도 인기가 많은 성형외과를 선호한답니다. 놀랍게도 성경도 외모에 점수를 많이 줍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에게는 사울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상 9:2) 마치 사울이 왕이 된 것은 그렇게 잘생긴 까닭 때문이라는 것 같이 보입니다. 다음 왕에게 기름 부으러 이새의 집에 들른 사무엘은 장남 엘리압을 보고 그가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님께서는 “너는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 보아서는 안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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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25
    서로 용서하세요.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하고 있는데 갑자기 ‘콩’하는 겁니다. 룸 밀러로 돌아다보니 검정색 승용차를 탄 차가 와서 살짝 받았습니다. 그 차도 방금 내 뒤에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도 딴 생각을 했나봅니다. 룸 밀러로 뒤를 보며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차는 아무런 흠집도 없습니다. 날씨가 무덥습니다.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은 때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조그마한 일로도 감정이 상해서 다툴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은 일에도 화를 먼저 내기도 합니다. 용서는 나를 먼저 용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면, 그래서 그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데이비드 A. 시맨즈’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강물 깊은 곳에 던지시고 강둑에다가 ‘낚시금지’라는 팻말을 꽂아 놓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용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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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19
    믿음의 카드 신용카드. 글자 그대로 신용이 담긴 카드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용카드는 그 사람에 대한 신용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돈,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신용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 롯데카드를 신청 했다가 거절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카드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일반 카드, 골드 카드, 플레티늄 카드 등등. 그 카드에 대한 대우나 년 회비도 다릅니다. 하나도 갖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용카드는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보실까?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카드를 주실까? 일반 카드? 골드 카드? 플레티늄 카드? 아니면 아예 신용불량자로 여기시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은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내 자신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나 스스로 내 믿음이 크다 혹은 작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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